매일신문

[취재현장] 원주민 두 번 울리는 LH

지난 15일 대구 수성구 연호지구에 화훼단지 농업인들이 내건 LH의 보상 평가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지난 15일 대구 수성구 연호지구에 화훼단지 농업인들이 내건 LH의 보상 평가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이화섭 기자
이화섭 기자

기자는 지난해 10월 내 집 마련을 했다. 대구 수성구 끝자락의 구축 아파트를 소위 말하는 '영끌'해서 샀다. 그러면서 매일 지나가는 달구벌대로 출근길, 연호동 인근 도로변에 걸린 현수막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연호공공주택지구에 토지를 수용당한 주민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됐고, 그들이 본 투기 정황과 의심의 근거들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기자 또한 투기 세력이 될 뻔한 상황이 기억났다.

지난해 초봄쯤으로 기억한다. 독립 한번 해보겠노라고 열심히 부동산을 돌아다니던 시기였다. 그러다 한 공인중개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꽤 괜찮은 부동산 투자 정보가 있는데, 한번 오시겠어요?"라기에 찾아갔더니 그 공인중개사는 "어디어디가 아직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대구에서 마지막 남은 개발 가능 지역이다"며 "그곳에 빌라 한 채 사 두면 나중에 돈이 되니 지금 들어가시라"고 했다. 부동산에 'ㅂ'도 모르던 때였고 독립해서 살 곳을 찾던 터라 목적에 맞지 않다고 판단, 듣기만 하고 다른 살 만한 아파트를 찾아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연호지구 주민들을 만나 '빌라 쪼개기' 신공(?)을 듣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 지도를 다시 살펴봤다. 연호지구와 벗어난 곳이었지만 적어도 주거 목적으로 지어진 듯한 느낌이 아닌, 뭔가 어설프게 지어진 빌라 한 채가 그곳에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나도 자칫 투기꾼 기자가 될 뻔했구나.'

이 에피소드를 공개할 수 있는 건 결국 '투자'라는 이름으로 곱게 포장된 행위가 누군가에게는 눈물을 쏟게 만드는 '투기'가 될 수 있고, 적어도 나는 그런 함정에서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연호지구 주민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적어도 공정하게는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연호지구에서 몇 대 동안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이어 산 주민들은 정작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듯이 나가야 하는 반면 돈 있는 투기꾼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원주민 행세를 하면서 받을 보상 다 받고 심지어 이주자보상택지까지 받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진짜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문제가 됐던 빌라에 초인종 한 번 안 눌러보고 거주 여부를 파악한 LH의 탁상행정적 실태 조사에 주민들은 더더욱 LH를 불신하게 됐다. 한 주민은 "LH 직원들조차도 '전기와 수도 요금으로 거주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이미 투기꾼들에게 파악이 된 상태'라며 푸념하더라"며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투기 세력을 적발해서 그들에게는 보상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LH는 미동도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연호지구 주민들은 "이런 투기꾼들 때문에 조성 원가가 올라가면 아무리 이주자보상택지를 조성 원가의 80%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고 해도 진짜 농사짓고 살던 원주민들은 건드려 보지도 못한다"며 "이런 투기꾼 못 잡아내는 LH를, 거기에 직원들의 투기 의혹까지 드러난 LH를 우리가 어떻게 믿으며 어떻게 그들이 제시한 보상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소연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는 권장돼야 할 덕목이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방법이 적법한 방법이라면 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방법이 누군가의 눈물을 담보로 한다면 과연 그것이 옳은 투자일까? 적어도 이번 취재를 통해 깨달은 것은 '남의 눈물을 담보로 하는 투자는 나뿐만 아니라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도 죄를 짓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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