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10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리 한 논. 주인 이모(84) 씨는 논 옆에 솟아있는 옹벽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그늘이 지면 벼 생육에 큰 지장을 줄 텐데, 이렇게 높게 벽을 치면 어떡하나. 사람 키만큼만 올린다더니 이럴 수 있나"며 울분을 터뜨렸다.
옹벽은 지난달 중순 주말을 틈타 하루아침에 세워졌다. 옹벽은 높이 2.5m, 길이 90여 m정도고, 논과 불과 50여 ㎝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전 시간에는 논 일부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옹벽 뒤로는 땅이 벽 높이만큼 성토돼 있는 데, 토지주 A씨는 지난해 4월 전원주택 건축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다.
이씨는 "정말 힘들게 마련한 땅이고, 이 땅을 경작해 결혼하고 자식도 낳고 공부도 시켰다"며 "목숨과도 같은 땅이 옹벽 탓에 피해를 입게 됐으니 화병에 걸릴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25살 되던 해까지 품삯을 받고 땅을 경작해오다가 이듬해 웃돈을 얹어주고 논 5천950㎡를 샀다. 12개로 쪼개진 계단식 논을 한 개의 논으로 만드는데만 십수 년이 걸렸다. 논을 경작하느라 한글은 떼지 못했어도 매년 벼를 수확하며 삶을 지켜왔다. 이렇다 보니 그에게 옹벽은 '철천지 원수'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A씨는 "요구조건을 최대한 들어준 상황에서 더는 공사를 미룰 수 없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A씨가 애초 건축 허가를 받은 옹벽의 높이는 4.5m였지만, 이씨의 민원에 2.5m로 높이를 낮췄다. 전원주택도 옹벽에서 3m 정도 떨어진 곳에 짓는 것으로 하고, 장마철 토사가 논으로 흘러들지 않도록 배수로도 만들기로 했다.
A씨는 "협의라는 것은 서로의 요구조건을 주고받는 것인데, 일방적으로 옹벽 높이를 더 낮추라고 하니 이제는 참기 힘들다"며 "하수시설 등을 설치하기 위해선 땅 높이를 2.5m 이하로 할 수 없는 건축상 문제도 있다. 지금도 손해보고 있는데, 이보다 더 양보하긴 어렵다"고 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해결이 쉽지 않지만 논에 그늘을 최소화하도록 옹벽에 경사를 주는 방법 등 갈등을 풀기 위한 중재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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