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여론의 진실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역사 속 왕조의 끝은 대체로 좋지 않다. 그래서 뒷날 사람은 옛사람의 일을 거울로 삼아 경계로 삼기도 한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언행을 삼가고 작은 징조나 조짐에도 새삼 마음을 다지곤 한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기 일쑤이고 역사는 그렇게 굴렀다.

옛사람이 앞날을 알지 못하니 흔히 점(占)을 친 까닭도 그렇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고구려 보장왕 시절 추남이란 점치는 사람 이야기와 백제 의자왕 당시 무당의 점 설화는 의미가 있다. 나라의 흥망과도 연결된 탓이다. 물론 전하는 이야기를 뒷날 고려 때 기록한 것이라 논란도 있겠지만 그래도 곱씹을 만하다.

왕이 함 속에 쥐를 넣어 추남에게 맞히게 했더니 '쥐 여덟 마리'라고 했다. 그런데 쥐는 한 마리였다. 추남을 죽이고 쥐의 배를 가르니 새끼 일곱 마리가 나왔다. 죽은 추남이 신라 땅 김유신으로 태어나자, 고구려는 첩자 백석을 보내 그를 죽이려 했지만 되레 백석이 죽고 고구려는 나라까지 망하게 된 사연의 설화이다.

또 백제에서 귀신이 '백제가 망한다'고 외치고 땅속으로 들어가자, 파 보니 거북 한 마리가 나오고 등에는 '백제는 보름달, 신라는 초승달 같다'는 글이 있었다. 왕은 무당이 '보름달은 가득 찬 것이니, 차면 이지러지고 초승달은 차게 된다'는 점을 치자 그를 죽였다. 다른 사람이 '보름달은 성하고 초승달은 미미하다'고 하자 기뻐했으나 나라는 망했다.

요즘은 이런 점의 역할을 여론이 대신하기도 한다. 여론은 국민의 마음이 담긴 민심의 흐름인 만큼 선거나 정치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숱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마음을 읽고 정치에 나서고 정책의 방향을 틀기도 한다. 그러나 두 왕조의 점 설화처럼 나쁜 여론은 흔히 무시된다.

지금 문재인 정부도 비슷한 조짐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나쁜 여론이 여럿이지만 당·정의 지도자는 이에 무딘 듯하다. 몇몇 지도자는 되레 더 당당하다. 그러나 비록 죽음을 맞았지만 점을 친 두 사람은 점의 진실을 말하고 역사에 남았듯이 지금의 여론 역시 정부·여당 사람의 외면에도 뒷날 진실을 말할 것이다. 여론의 진실은 4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선거로 드러날 것이다. 봄 같지 않은 요즘이라 갑갑하지만 그래서 참고 기다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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