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1920년생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016년 출간한 책이다. 직접 백 년을 살아보니 삶이 이렇더라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이 담겨 있다. 책에서 김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세에서 75세라고 했다. 60세부터 세상사를 두루 이해하며, 75세까지는 얼마든지 정신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101세가 된 김 교수와 61세로 '인생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만난 게 장안의 화제가 됐다.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2주간 자택에서 칩거하다 첫 나들이 대상으로 원로 철학자인 김 교수를 만났다. 윤 전 총장 부친과 김 교수가 친분이 깊은 데다, 윤 전 총장이 김 교수의 책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고 감명을 받은 게 만남의 계기가 됐다.
40년 터울인 두 사람의 대화에서 반가운 단어들이 많이 등장했다. 윤 전 총장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에 김 교수는 "지금 청와대나 여당에서 꺼내는 이야기는 국민 상식과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화답했다. 공정과 정의, 애국심도 대화의 소재가 됐다.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의미가 변질됐고, 실종됐고, 시궁창으로 굴러떨어진 단어들이다. 문 정권 인사들이 그렇게도 외쳤던 단어들이 두 사람 대화에 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김 교수의 "편 가르기를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시선을 끌었다. "정의는 정의고 불의는 불의인데 편 가르기를 하면 잣대가 하나가 안 된다"고 했다. 문 정권의 편 가르기에 고초를 겪었던 윤 전 총장으로서는 가슴에 와 닿는 조언이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중국에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늙은 말이 길을 잘 찾아간다는 뜻이다. 오랜 인생 역정을 통해 터득한 경험과 지혜가 소중하다는 비유들이다. 1세기가 넘는 삶을 산 김 교수로부터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윤 전 총장이 정치는 물론 인생의 지혜도 터득했기 바란다.
사족(蛇足)을 달면 김 교수 책에서 불현듯 문 정권 4년을 결산하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문재인 시대를 살아보니'다. 우리 국민이 이런 제목으로 각자 책을 쓴다면 어떤 단어들과 내용이 들어갈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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