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예술속 사투리
8)영화속 사투리 역사와 전통
◆ ' 5인의 해병' 사투리 첫 작품
한국영화에 사투리가 등장한 것은 언제 부터일까.
1961년 '5인의 해병'(감독 김기덕)에서 박노식씨가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를 써 크게 인기를 끌었다. '맨발의 청춘'(1964)을 연출하기도 한 김기덕 감독은 "'5인의 해병'이 한국영화에서 사투리를 처음으로 시도한 작품"이라고 후일 밝혔다.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표준어만 쓰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는 녹음 시스템과도 연관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영화들이 후시녹음을 했다. 촬영과 동시에 배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동시녹음이 기술적으로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성우가 목소리 연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몸 연기와 목소리 연기의 주인공이 달랐던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 것이 지난 2018년 별세한 강신성일 배우다. 그는 1957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 신인배우 모집에 뽑혀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다. 184cm의 큰 키에 귀공자풍의 20대 젊은이였다.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제임스 딘처럼 반항적 눈빛도 엿보이는 신인으로 대성할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발성이었다. 대구 출신으로 사투리 억양이 심한 편이었다. 대사만 하면 귀공자의 이미지가 무너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후시녹음이 보편적이라는 사실. 목소리 연기자가 따로 있었다. 1960년대에 성우 이창환, 1970~1980년대에는 성우 이강식씨가 그의 목소리를 전담했다.
◆ 후시녹음 제작시스템 영향
500여 편의 그의 영화 중에 실제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길소뜸'(1986), '레테의 연가'(1987) 등 8편뿐이다. 전설적인 원로 배우지만 발성이 좋지 않아 뒤에서 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은 본인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한국영화 제작시스템의 한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후시녹음의 최대 수혜자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동시녹음이 자리 잡아 가면서 배우들도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사투리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화 속 사투리에는 고착화된 인식이 깔려 있었다. 대부분 촌에서 상경한 인물을 드러내는 조연들의 언어였고, 주인공이나 우아한 조연이 쓰는 것은 늘 표준어였다. 지역을 비하한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사투리의 전형성이 거의 사라졌다. 대신 극적 리얼리티를 높인다거나,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사투리를 가미하는 경향으로 전환됐다.
윤종빈 감독의 '공작'(2018)은 1993년 북한 핵개발로 위기가 고조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흑금성'이란 암호명으로 북한에 침투한 남한 스파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첩보영화다. 배우 황정민 씨가 정보사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된 '흑금성' 박석영 역을 맡았다.
"인자 같은 식군데 고름 좀 고마 짜이소.", "광고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더. 일단 성사만 되모 관광이니 머니 해가 수익이 장난이 아닐낍니더.", "참 답답시럽네. 골동품 수수료 좀 무꼬예."
박석영은 광고물 제작으로 북한이 엄청난 달러를 벌 수 있다며 접근해 결국 최고 지도자까지 만난다. 의심이 많은 북한 고위급 인사를, 어수룩한 경상도 사투리로 꾀어 결국 성공한 것이다.
'흑금성'의 실제 인물은 충청도 사투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경상도 사투리로 각색한 이유가 뭘까. 황정민 배우가 마산 출신이란 점도 있겠지만, 캐릭터의 우직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일 가능성이 있다.
◆사투리,거칠고 저돌적인 캐릭터
경상도 사투리는 거칠고, 저돌적인 캐릭터를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된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형사 역이다. 황정민, 류승범 주연의 '사생결단'(2006)도 그런 케이스다.
'사생결단'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부산을 배경으로 설정 대부분 장면이 부산에서 촬영되며 황정민, 류승범 두 주인공 역시 진한 부산사투리로 거친 남성미를 발산했다. 황정민은 마약계 거물을 잡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힌 거친 형사로 나왔다. 황정민 배우는 억양 뿐 아니라 단어까지 완벽하게 사투리를 연기해 경상도 외 관객들이 대사를 알아듣지 못할까 걱정까지 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에서 구희봉 반장의 후임이 신동철(송재호)이다. 연쇄살인사건 수사에 방향이 대폭 전환되는 시점이다.
송재호 배우는 1959년 부산 KBS성우로 데뷔해 '영자의 전성시대'(1975) 등으로 얼굴을 알렸다. 부산에서 살아 부산 사투리를 어색하지 않게 잘 구사했으며, 평양에서 출생해 평양 사투리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영화 '용의자'에서 이북 출신 기업 회장 박건호 역으로 나와 탈북민들도 인정할 정도의 사투리 연기를 했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형사반장으로 나왔다. 경기도라는 지역성으로 보면 돌출적인 인물이었지만, 더 다급해진 상황이란 점을 잘 드러내주었다.
◆다양성과 리얼리티의 도구로
시대극에서 경상도 사투리는 보수적인 지역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1987'(2017)에서 강 치안본부장이 대표적인 캐릭터다. 안동 출신의 강민창 당시 본부장이 실제 모델이다. 영화에서는 박처원 대공처장 역을 맡은 김윤석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강민창 전 본부장의 입에서 나왔다.
강 본부장을 맡은 배우 우현은 1987년 최일선에서 투쟁했던 운동권 학생이어서 더 아이러니한 캐스팅이었다.
기질, 생각과 취향, 개인의 성장 환경 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던 과거 영화 속 사투리의 전형은 이제 거의 소멸됐다. 한때는 '촌놈'의 대명사로, 한때는 희화적인 묘사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양성과 리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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