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황태 씨 장모 하태준 씨

2018년 김황태(두번째줄 가운데)씨의 장인어른을 추모하기 위해 영천호국원에 모인 하태준(두번째줄 오른쪽) 씨와 5남매, 가족제공.
2018년 김황태(두번째줄 가운데)씨의 장인어른을 추모하기 위해 영천호국원에 모인 하태준(두번째줄 오른쪽) 씨와 5남매, 가족제공.

장모님을 집에 혼자 계시는 것이 불안하여 노인 복지센터에 낮 동안 계시도록 하였다. 어제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못 가겠다고 떼를 쓰셨다. 오늘은 절에 가야 한다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며 버티신다.

하루는 금시계가 없어졌단다. 자기의 전 재산인데 큰일이라며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하신다. 누가 훔쳐 갔다고 했다가 종씨에게 약을 넣으라고 준 것 같단다. 종 잡을 수가 없다. "장모님이 숨겼잖아요. 잘 찾아보세요." 아니란다. 징징 우시며 제발 시계에 전화를 해달라신다. 휴대폰을 감추었을 때 전화를 하여 찾은 일이 어렴풋이 생각나시는 것 같다. 하루는 노인이 119에 전화를 하여 누가 금시계를 훔쳐갔다고 해서, 경찰에서 전화가 오고 온 가족들이 식겁을 했다. 119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는지 귀신이 곡할 일이다.

18K 금으로 된 손목시계는 막내딸이 해준 것이라 애지중지하시는 것이다. 시계가 고장이 났는데도 항상 차고 다니신다. 고치게 빼 달라니 절대 주시지를 않는다. 그놈들이 부속을 빼간단다. 화장실에 가실 때는 빼놓으신다. 귀한 시계에 냄새가 밴다고 꼭 빼고 가시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데 놓고 가면 좋지만 그사이 누가 가져간다고 숨기신다. 숨겨 놓고는 기억을 못 하여 생난리를 치시니 황당하기만 하다. 단칸의 좁은 방이라 숨길 곳이 빤한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온통 집안을 다 뒤져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참 똑똑하셨고 된장찌개를 잘 끓이시던 장모님이다. 어떻게 이래 되어 가는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장모를 보니 처연하게 서글프다. 그러면서도 다행스럽기도 하다. 전화하신다는 것은 정신 줄을 완전히 놓으신 것이 아니고 살아 계신다는 증거이다. 너무 잦은 전화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흠칫 놀랜다.

장모님은 빨아 놓은 빨랫감이 없어졌다고 심각한 날도 있었다. 기름과 간장을 퍼갔다고 하지를 않나 전기를 훔쳐간단다. 숨어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통을 가지고 와서 퍼가더란다. 망상에 사로잡혀 소설을 쓰고 계신 것이다. 돌덩이가 가슴에 꽉 찬 듯 묵직하게 답답하다.

단칸방에 홀로 사시면서도 절대로 자식들 집에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엄마 사랑해. 이제 편히 가셔." 딸들의 흐느낌에 노인은 눈을 슬며시 뜨는가 싶더니 스르르 생을 마감하셨다. 자기 집을 떠나면 죽는 줄 아는 노인이었다. 어느 날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같이 식사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셨는데 영 식사도 안 하셨다.

하는 수 없이 세 딸이 번갈아 가서 억지로 식사를 챙겨드리며 수발을 들었으나 곡기를 끊으시고 기저귀를 차셔야 하는 상황이 되셨다. 치매 노인 보살피는 것이 하루 이틀이지 자식들도 지쳐갔다. 고심 끝에 요양원에 모셔야 했다. 장모님은 요양원에 모신지 3개월쯤 사시다가 떠나신 것이다.

벚꽃이 화려한 봄날이다. 생시인 듯 꿈인 듯 막걸리 한 잔에 춘몽에 젖어 든다. 노인은 꽃을 좋아 하셨다. 장모님이 살아 계셨으면 벚꽃을 보면서 "좋다. 참 좋다."를 연발하셨으리라. 장모님은 자식들과 식사하는 자리를 갖게 되면 사위에게 막걸리를 사주시겠다고 하셨다. 지갑에 챙겨 놓은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두 장을 손에 쥐고 술값을 내시겠다고 한다.

막걸리 한 병에 사천 원이라고 하면 우물쭈물하신다. 돈은 아깝고 사위 막걸리는 사주어야 하겠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돈이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사주시던 막걸리가 생각나는 꽃피는 봄날, 장모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김황태 시니어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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