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수 기자의 클래식 산책]<12>2차 대전 중 BBC 뉴스 시그널로 사용한 '운명' 교향곡

'딴딴딴 따~ 딴딴딴 따~'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제5번 교향곡 '운명'은 '승리 교향곡'이라는 별칭이 있다. 우연이겠지만 세 번 짧고 한 번 긴 박자 셋잇단음 모티브인 '딴딴딴 따~'의 리듬이 '승리'(Victory)의 첫 글자 'V'의 모스 부호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운명 교향곡은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쟁 시에는 적국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꺼리기 마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 연합국 쪽에서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음악 연주가 금지되었다. 독일인 작곡가인 베토벤의 음악도 연합국 측에서는 당연히 내보내지 않았다. 다만 한 곡 예외 음악이 바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BBC 방송은 뉴스 시그널로 이 음악을 사용했다. 이는 나치의 통제 아래 있는 유럽 가정에 전파되는 희망의 신호였고, 전쟁 승리를 염원하는 뜻이기도 했다. 전시에 적국(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방송 시그널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찬반이 있었지만, 영국인들은 비록 적대국 작곡가의 곡이지만 그것을 초월한 보편적인 힘이 이 음악 속에 있었다고 봤다. 전제주의를 부정했던 베토벤을 독일 작곡가만이 아닌 인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인정한 것이다.

4개 악장으로 구성된 운명 교향곡은 클라리넷과 현악이 어우러진 제1테마로 1악장을 시작하며 이 테마가 1악장을 지배한다. 2악장에서는 느린 박자의 테마가 조용하고도 명상에 잠긴 듯한 선율로 악장의 중심을 잡고, 여러 형태로 변주된다. 3악장은 빠른 박자의 춤추는 듯한 리듬을 보여주지만 명랑하기보다는 오히려 비통한 소리로 절규하는 듯하다. 신비롭고 경쾌한 선율이 끊기지 않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간다. 4악장에서는 개선가처럼 힘차게 시작되며 지금까지 긴장된 것이 마침내 폭발하는 모습을 그린다.

운명 교향곡을 '운명'으로 보느냐, 아니면 '승리'로 보느냐에 따라서 해석을 달리 한다. 어떤 비평가는 1악장에서 시련과 고뇌, 2악장에서는 다시 찾은 평온함, 3악장에서는 쉼 없는 열정, 4악장에서는 운명을 극복한 환희가 느껴진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독일의 한 음악사학자는 각 악장에 '몸부림', '희망', '의심', '승리'의 이름을 달았다.

이번 주말, 시간이 나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과 함께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운명 교향곡을 들으면서 삶의 운명, 또는 승리에 대해 생각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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