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영화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그간의 논고들을 묶어 현재까지도 교과서처럼 읽히는 위대한 저작을 내놓는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서부터 영화의 존재론적인 가치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대담한 질문의 기저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매력에 대한 긍정과 신뢰가 깔려 있다. 바쟁은 영화가 기존의 다른 예술들과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다른 고전예술들과 달리 영화만이 구현할 수 있는 미학적 가능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다.
2020년 12월 국내에서 가장 유력한 영화잡지에 실린 특집기사의 제목은 '넷플릭스가 쏘아올린 질문, 영화란 무엇인가'였다. 40년의 시차를 두었다지만, 동일한 질문이 품은 뉘앙스가 어쩜 이렇게 180도 달라질 수 있을까 놀랍다. 40여 년 전 바쟁의 질문이 영화의 힘을 긍정하는 자신감에 찬 표현이었다면, 오늘날의 질문에서는 영화 매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과 염려가 읽힌다.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대전제는 예전부터 논의의 대상이었고, 최근 들어 이 논쟁은 더욱 첨예해졌다. 2018년 칸영화제가 넷플릭스 상영작을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을 때, 반대로 베니스영화제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넷플릭스 제작 작품 '로마'에게 최고상을 안겨주었다. '어벤저스'같은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고 일갈하면서 신작을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개봉한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경우를 보면 사안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영화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영화인가'가 더 유효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사냥의 시간', '승리호'처럼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한 국내 블록버스터들의 사례가 늘어나면서, 우리도 '극장시대의 종언'이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최대 극장 체인 CJ CGV도 3년 내 오프라인 상영관의 30%를 폐점하고 온라인 콘텐츠 제작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니,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성장과 극장의 축소는 예견된 미래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영화라는 양식 자체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악의 소비가 단기간에 LP나 CD 시대에서 MP3와 온라인플랫폼으로 이행한 것처럼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즉각적이고도 전면적인 소비양식의 변곡점에서, '영화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드라마와 웹콘텐츠와 달리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 미학적 성취를 위한 치열한 고민 속에 영화의 미래가 있을 것 같다.
이승우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창작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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