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타락하는 운동권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1917년 10월 혁명에 대한 소련 공식 역사는 레닌 등 혁명 지도자들의 치밀한 사전 계획의 결과로 기술한다. 이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웃기는 소리'로 압축된다. 러시아 혁명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러시아 출신 영국 역사학자·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차르 독재 타도에 대한 레닌과 볼셰비키의 공헌은 하찮은 것"이며 "볼셰비즘은 비어 있는 왕위를 계승했을 뿐"이라고 했다. 독일 출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더 직설적이다. "볼셰비키는 길거리에 방치된 권력을 발견하고 주웠을 뿐이다."

이들이 말하고자 한 것은 러시아 혁명은 민중의 자발적 봉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지 볼셰비키가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혁명을 눈앞에 둔 1915년의 러시아 상황을 보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실이다. 당시 '빵을 달라'는 파업과 함께 전쟁(1차대전) 종식, 군주정 타도 등 정치적 시위가 폭발했다.

여기서 볼셰비키를 포함한 '혁명정당'은 부차적인 역할밖에 못 했다. 특히 볼셰비키는 경찰의 탄압으로 조직이 크게 위축돼 수도 페트로그라드의 당원 수는 500명이 채 못 됐고, 지방은 더 쪼그라들어 있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레닌도 10월 혁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1917년 1월 망명지 스위스에서 한 연설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구세대에 속한 우리들은 미래의 혁명의 결전을 보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권의 운동권 출신들은 민주화가 자신들의 공인 양 으스대지만, '운동'할 당시 그들은 말 그대로 '한 줌'밖에 안 됐다. 대학에 다니며 '운동'할 형편이 못 돼 생업에 몰두해야 했던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운동은 운동으로 그쳤을 것이다. 직선제 개헌으로 이어진 6·29선언이 그렇다. 이른바 '넥타이 부대'의 봉기가 아니었다면 운동권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문 정권의 '운동권'은 이를 잘 알아야 한다. 한국 민주화의 '주체 세력'은 자신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화 주체 세력'을 참칭(僭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동 경력 하나만 있으면 당대는 물론 자식까지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법을 만지작거린다. 역겹기 그지없는 운동권의 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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