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패왕별희:디 오리지널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어제는 배우 장국영(1956~2003)의 기일이다.

여린 듯, 슬픈 듯 묘한 그의 이미지는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이날만 되면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장국영 영화 최고의 작품이라 할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1993)가 이번 주 '디 오리지널'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개봉했다.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은 기존 156분에서 15분이 추가됐고,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화질도 보강됐다. 눈물을 가득 담아 일렁이는 장국영의 눈빛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두 경극배우가 무대로 향한다. 천하무적의 영웅 초패왕, 마지막까지 그를 지켰던 우희. 무대가 사라진 체육관 건물.

"뭐하는 사람들이요?"라고 관리인이 묻는다.

"우리는 옛 경극배우들입니다."

"아니, 두 분은… 전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관리인이 둘을 위해 불을 켜준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된다.

1924년 베이징. 어린 두지가 매춘부인 엄마의 손에 이끌려 경극학교에 온다. 육손인 두지를 학교가 받아주지 않자, 엄마는 그 자리에서 두지의 여섯 번째 손가락 잘라버린다. "나는 본디 계집으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읊지 못해 매질을 당하지만, "난 왕이 되고, 네가 왕비가 되는거야"라는 두 살 많은 시투의 말에 힘을 얻는다. 가혹한 체벌과 혹독한 훈련에도 두지는 남자다운 시투와 단짝이 된다.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세월이 흘러 1937년 두지(장국영)와 시투(장풍의)는 우희와 패왕으로 인기 경극배우가 된다. 우희에 몰입할수록 두지는 시투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시투가 홍등가의 주샨(공리)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큰 상실감에 빠진다.

이후 두지는 아편에 의지하고, 일본군 앞에서 경극을 했다는 이유로 감옥까지 가지만, 시투에 대한 그리움과 갈등은 쌓이기만 한다. 이들에게 더 큰 비극이 다가오고 있었으니 1966년 문화 대혁명이었다.

'패왕별희'는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한 경극배우의 슬픈 삶을 그린 걸작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남성성이 거세된 채(육손이 잘린 상징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특히 애잔하고 애틋한 장국영의 눈빛 연기가 관객에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영화였다. 제46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당시 중화권 최초였다.

지금의 중국을 생각하면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중국 영화다. 이번 개봉 버전도 여전히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무삭제판이다.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추가된 장면들은 예전에 동성애 코드 우려 때문에 쓰지 못했던 장면들이다. "나는 본디 계집으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못해 체벌을 당한 두지를 시투가 씻겨주는 장면, 성인이 된 두지가 시투에게 "1분 1초라도 떨어지면 한평생이 아니잖아"라고 애원하는 장면, 두지가 주샨과 결혼을 선언하는 시투에게 "가지 말라"고 말하는 장면 등이다. 시투를 향한 두지의 감정들이 세밀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시투를 향한 두지의 애틋함을 동성애로 낙인찍을 수 있지만, 가혹한 역사에 휘둘린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군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배우, 그러나 그들에게 다가온 숙청의 시간과 이어지는 문화 대혁명. 역사라는 수레바퀴에 자유로운 이가 누가 있을까. '패왕별희'는 이를 패왕과 우희의 이별로 은유하고, 한 경극배우의 한 맺힌 개인사와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디지털 작업을 거쳐 첸 카이거 감독의 영상미도 살아난다. 경극의 화려한 분장과 의상이 더욱 선명한 색감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패왕별희'는 중국적인 소리와 색채로 가득 차 있다. 캐릭터의 인생유전이 드라마틱한 중국 현대사처럼 극적이다. 무엇보다 장국영의 인생작으로 그의 삶과 닮은 혼신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장국영의 눈빛 연기와 함께 그가 부른 OST '사랑이 지난 후에'가 사랑할 시간을 주지 않은 우희, 아니 장국영의 슬픈 이별을 떠올리게 해 가슴을 울리게 한다.

지금은 사라진 옛 제일극장에서 '패왕별희'를 본 후 한동안 쟁쟁거리는 소리와 함께 떠나지 않던 슬픔이 기억난다. '패왕별희'는 1993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울에서 개봉했지만, 대구에서는 이듬해 3월에야 개봉했다.

그때 모 방송국 개그맨은 콘테스트에서 장국영 흉내로 입상하기도 했고, 첸 카이거가 내한해 영화 홍보를 하기도 했다. '패왕별희'는 무려 3개월이나 나를 감질나게 한 영화였고, 개봉하자마자 뛰어가 본 후 내 삶의 영화가 됐다. 매년 4월 1일 장국영의 영화를 감상하며 그를 추모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된, 그 계기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171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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