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사투리] “어린왕자 사투리판 4쇄 찍을 만큼 반응 좋아"

③사투리와 사람들-1. '애린왕자' 최현애 씨

최현애
최현애

최근 사투리판 어린왕자를 펴낸 최현애(38)씨.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포항시 북구청 부근의 1인 출판사 '이팝'을 찾아 어린왕자 사투리판인 '애린왕자'의 탄생 배경과 과정을 들었다. 출판사는 책상과 의자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좁고 작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녀는 밝고 명랑했다. 포항출신이면서 대학은 충청도에서 졸업했고 싱가포르에서 5년 정도 살았던 최씨는 이런 궤적들이 모여 '애린왕자'가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애린 왕자'의 반응은 어떤가요

-4쇄를 찍을 만큼 반응이 좋아요. 300부만 찍을 생각이었는데 영국 호주 이탈리아등 해외에서도 연락이 올만큼 응원이 많아서 매우 기쁩니다.

▶사투리로 책을 낸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포항을 떠나서 오랫동안 생활했습니다. 2019년 말, 다시 찾아온 포항은 많이 달라져 있었고 낡아졌고 변했지만 사투리가 주는 편안함과 푸근함은 한결같았습니다. 또 이곳에는 사투리를 연구하는 분들이 많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요.

▶첫 책으로 '어린왕자'를 고른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향에 오니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유년의 동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그 동심의 끝에 '어린왕자'가 있었습니다. 어린왕자를 사투리로 번역하면서 원작을 파괴하거나 동심을 해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어학자가 아닌 사투리 사용자의 관점에서 한번 해보자는 오기로 버텼습니다.

▶저작권등 문제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저작권이 가장 문제였습니다. 싱가포르 있을 때에 출판부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전 세계 출판에 대한 정보가 빠르고 방대하지요. 다행히 독일의 출판사 틴텐파스(Tintenpass)가 '어린왕자'를 세계언어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습니다. 독일 출판사에 사투리 어린왕자 한국판을 제안을 했더니 바로 승낙했지요. 프로젝트 에디션 125번인 '애린왕자'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약간은 기적 같은 일이기도 했지요.

애린왕자 표지
애린왕자 표지

▶번역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독일출판사로부터 영문판을 받았고 그것을 사투리로 번역했습니다. 사투리로 번역한 텍스트를 독일로 보내면 그곳에서 편집하고, 그 편집본을 받아 여기에서 출판하는 형식이지요. 그런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독일 출판사에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편집된 것을 바로 인쇄 할 수 없었지요.

▶사투리 번역은 어떻게 했습니까? 혼자 힘으로는 어려울 듯한데요.

-영문을 바로 사투리로 고쳤습니다. 사투리로 번역한 원고를 지역에 계시는 언어학자 세 분에게 보내드렸더니 빨간 팬으로 사정없이 고쳐왔습니다(웃음). 이곳에는 사투리를 연구하는 분들이 많아 걱정 없이 감수나 자문을 받을 수 있었지요. 지역의 동화작가 도움도 컸습니다.

▶번역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나요

-단어를 사투리로 고치는 것은 쉬워요. 그보다 용언활용에 집중했습니다. 사투리의 용언활용을 다양하게 보여주면 경상도 사투리의 다양한 어조나 어감 어태를 모두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표준말 각주도 달았으나 너무 딱딱할 것 같아 마지막 작업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사투리 번역 작업에 1년 정도 걸린건가요

-지난해 초 시작해서 그 해 10월에 편집이 끝났습니다. 제작비가 부족해 인쇄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행히 12월에 대구서 인쇄 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애린왕자' 오디오 북도 제작했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신 할머니가 책이 출판되기 직전에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린왕자 전라도판이 곧 출판된다고 들었습니다.

-6월경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다행히 전라도 판으로 번역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맡겼습니다. 앞으로 충청도판등 전국의 다양한 사투리를 다양한 형식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유치원생이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사투리를 듣고 책으로 만드는 방법 등도 생각해 보고 있어요.

▶포항에 정착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수도권에서 출판사를 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방은 안된다' '지방문화는 보여줄게 없다'라는 생각을 뒤엎고 싶었습니다. 열패감에 주저앉고 싶지 않았고 지방 문화의 풍성함을 보여주겠다는 오기도 작용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 어린왕자 사투리판 '전국 8도 콜랙션'을 만드는 것입니다. 잘 될지 모르겠지만(웃음). 또 각색이나 변주한 작품보다는 스스로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아무도 엣세이가 될 것 같습니다.

▶사투리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서울 가면 잔뜩 주눅 들어 포항에 내립니다. 그런데 사투리를 실컷 쓰다보면 주눅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생겨납니다. 사투리의 힘이겠지요. 어린왕자 번역을 위해 1990년에 제작된 영일군사(迎日郡史)중 체록 부분을 읽으면서 재미도 있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투리에 윗세대의 아픔이 그대로 녹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투리는 지역민의 피 속에 흐르는 유대감을 높여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예쁜 유전자'라고 생각합니다.

※소박스

애린왕자 중에서

*사막이 아름답은 기는, 어딘가 응굴(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데이

*니 장미를 그마이 소중하게 만든 기는 니가 니 장미한테 들인 시간 때문 아이가

*내 비밀은 이기다. 아주 간단테이. 맘으로 바야 잘 빈다카는 거, 중요한 기는 눈에 비지 않는다카이."

*아제가 밤 하늘을 바라보모, 내가 그 별 중에 어느 별에 살고 있고, 내가 그 별들 중에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이까, 아제는 별이 마카 웃고 있는 기로 보일 기야. 아제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가지는 기지!

글·사진 김순재 계명대 산학인재원교수 sjkimforce@naver.com

이 기사는 계명대학교와 교육부가 링크사업으로 지역사랑과 혁신을 위해 제작했습니다.

◆다시, 사투리 연재 순서

1.왜 다시, 사투리 인가

2.예술 속 사투리

3.사투리와 사람들

4.외국의 사투리 보존과 현황

5.대담

◆사투리 연재 자문단

김주영 소설가

안도현 시인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

김동욱 계명대학교 교수

백가흠 계명대학교 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