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유명한 이 말을 지는 벚꽃을 보며 되뇌었다. 매년 그랬다. 뉴스를 통해 전국 각지 벚꽃 명소의 소식을 접하고 벚꽃 축제 인파를 TV에서 보는 것이 봄의 통과의례였다.
대구는 서울보다 먼저 벚꽃이 찾아오고 멀리 가지 않더라도 수성못, 두류공원, 용연사, 동촌유원지 등 아름다운 벚꽃 명소들이 많다. 앞산카페거리도 많은 대구시민들이 벚꽃을 보러 찾아오는 곳이지만 정작 이곳이 생활 터전인 필자는 이런저런 핑계로 벚꽃을 놓치기 일쑤다.
내일 구경해야지 하다가 야속하게 오는 비에 꽃잎들은 반쯤 떨어지고, 남은 꽃이라도 한번 봐야지 하고 우물쭈물 하는 사이, 이미 초록빛으로 변한 벚나무를 보며 내년을 기약한다.
여름 장미가 지는 것을 이토록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가을 국화가 진다고 내년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유독 벚꽃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긴다. 어쩌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벚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봄이 오면 벚꽃이 피는 게 아니라 벚꽃이 피어야 봄이 온 건지도 모른다.
새하얗게 피어나는 여린 꽃잎들은 잊고 지내던 어떤 감정을 일깨우고, 여전히 빛나지만 맥없이 떨어지는 꽃잎에서 각자의 삶에서 고이 접어야했던 순간들을 엿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네 삶이 피어있는 시간도 실은 벚꽃처럼 찰나임을 상기했을 수도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학작품들을 읽다보면 나 혼자만 서글퍼하는 건 아닌가보다.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그림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던 공광규 시인의 '흰 눈'이란 시를 읊어본다.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중략)
앉다가 / 앉다가 /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겨울에 내렸던 것은, 매화나무 가지에, 벚나무 가지에, 그리고 앉다가 앉다가 할머니 머리 위에 앉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언젠가는 그 무엇이 내 머리 위에도 수북이 앉을 터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서 앞으로 몇 번 더 벚꽃을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관광버스를 타고 춤을 추며 꽃구경을 다니던 중년들을 이제 째려보지 못하게 되었다.
올해는 코로나로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 군항제도 작년에 이어 취소되었고 여의도 윤중로 역시 전면 통제되기도 했다. 여의도 벚꽃축제는 온라인으로 열렸고, 벚꽃길을 한시적으로 추첨을 통해 산책할 수 있단 소식에 '벚꽃 로또'라는 말이 생기고 암표까지 등장했다는 기사도 보았다.
지자체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벚꽃구경을 권장하기도 했다. 인파 속에서 벚꽃을 누리던 일상이 코로나 방역을 방해하는 눈살 찌푸리는 행위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내년에는 '벚꽃엔딩'을 흥얼거리며 마스크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벚꽃을 만끽하고 싶다.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매일 너는 논다'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보니 이 분도 내 맘과 다르지 않았나보다.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 하기를'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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