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뉴스Insight] '무조건 감속' 도로 정책, 운전자 속 탄다

17일부터 도심 '안전속도 5030' 시행
보행자 사고 위험 없는 구간도 획일적 적용

오는 17일부터 도심 도로의 차량 통행속도를 낮추는
오는 17일부터 도심 도로의 차량 통행속도를 낮추는 '안전운전 5030' 정책이 시행된다. 사진은 통행속도가 30㎞로 제한된 대구 도심 주택가 모습.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김교성 디지털 논설위원

#1. 아파트 입구에서 30m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사방 어디로 가더라도 제한 속도 시속 30㎞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다. 승용차를 몰고 나갈 때마다 '운전 조심'을 다짐한다. 가족들은 서로 안전운전을 강조한다. '민식이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전부터 운전에 주의를 기울였다.

아파트 정문 바로 앞 건물 1층에는 태권도학원이 자리했다. 아파트 진입을 위해 정차하다시피 움직이는데 학원에서 나오는 어린이의 낌새가 이상했다. 브레이크를 밟고 어린이를 보니 그냥 길 건너 달려간다.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방어 운전이 필요하다.

#2. 대구 수성구 대구스타디움 앞 유니버시아드로는 편도 5, 6차로로 아주 넓은 구간이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이 없는 운전하기 좋은 도로다. 도심 좁은 도로에서 빠져나온 차량은 이곳에서 보행자 걱정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의 제한 속도가 어느 날부터 80㎞에서 60㎞로 줄었다. 내비게이션 안내는 여전히 80㎞이다. 제한 속도 80㎞일 때도 이곳 지하 통로의 함정 단속에 걸리는 차량은 넘쳐났다. 3차로에서 규정 속도 60㎞로 운전하니 모두 추월했다. 예전 운전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과속에 따른 교통 범칙금 고지서를 받는다.

차량 운전자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초보나 난폭 운전자에 대한 방어를 포함, 안전운전을 하려면 핸들을 잡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눈을 돌려야 한다. 전방 먼 곳에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백미러와 좌우 사이드미러로 부지런히 시선을 옮기는 게 모범 운전자의 태도다.

하지만 앞으로 운전자들은 도로 바닥도 자주 봐야 할 것 같다. 통행 구간의 제한 속도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과속 단속 카메라에 대비하려면 도로 바닥에 적힌 제한 속도를 잘 봐야 한다. 운전자의 시야에 들어오는 교통 표지판은 많지 않은 데다 크기가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보행자 중심' 도로 정책에 따라 도심 도로 차량 통행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오는 17일부터 대구 등 전국의 도시 지역에서 시행된다.

대구 도심 도로 대부분은 50㎞ 이하로, 주택가·이면도로는 30㎞ 아래로 제한된다. 신천대로는 제한 속도 80㎞로, 주요 간선도로인 달구벌대로, 동대구로, 신천동로, 앞산순환도로 등은 제한 속도 60㎞로 설정됐다. 현재 대구에서 제한 속도 60㎞인 구간은 347㎞(45.2%)에서 203㎞(26.4%)로 줄어들고, 제한 속도 50㎞인 구간은 121㎞(15.8%)에서 296㎞(38.6%)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이에 따라 대구 도로 곳곳의 제한 속도가 이전보다 더 들쭉날쭉해졌다. 1~2㎞의 짧은 구간에서 제한 속도가 여러 차례 바뀌는 곳도 숱하다. 대표적인 구간은 범안로의 앞산터널로~관계삼거리, 아양로의 큰고개오거리~아양교사거리, 당산로의 중리체육공원~두류시장네거리, 명륜로의 계산오거리~웨딩거리, 수성로의 수성대림1차이편한세상아파트~중동네거리 등이다.

수성구 범물동의 앞산터널로~관계삼거리 1.1㎞ 구간을 보자. 이곳에서만 80㎞에서 60㎞→50㎞→60㎞→80㎞로 4차례나 제한 속도가 바뀐다. 앞산터널로의 제한 속도는 80㎞. 터널에서 나온 뒤 범일초등학교 인근 250m 구간에선 60㎞로 감속된다. 얼마 가지 않아 용지네거리까지 330m 구간은 50㎞로 낮아진다. 용지네거리를 지나 관계삼거리까지 430m 구간은 60㎞로, 관계삼거리에서 시작되는 범안로는 80㎞로 각각 다시 높아진다.

제한 속도가 오락가락하는 곳은 사실상 도시 지역 전체다. 아파트가 밀집한 동네 집에서 출발해 1㎞ 남짓 구간의 제한 속도를 교통 표지판과 도로 바닥을 통해 확인해보니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30㎞에서 40㎞→50㎞→30㎞→50㎞→60㎞로 변경을 거듭했다.

제한 속도를 제대로 지키며 달리는 차량은 얼마나 될까. 초보 운전자가 아니라면 금방 바보 느낌이 들 것이다. 보행자 중심의 도로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운전자는 없다. 운전대를 놓으면 보행자가 되기에 누가 싫어하겠는가. 교통사고 발생 감소에 도움이 된다면 스쿨존이나 주택가에서 더 강한 처벌과 단속 조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요 간선도로 상당 구간은 보행자가 거의 없는 운전자 친화적인 곳이다. 예전 제한 속도 80㎞의 간선도로를 60㎞로 줄이면 운전자들은 큰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미 바뀐 표지판을 보며 혼란에 빠져 있다. 도시 외곽에 조성된 도로도 마찬가지이다.

지자체와 경찰청은 이런 실정을 어느 정도 파악해놓고 있다. '안전속도 5030' 정책 시행 후 민원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되는 구간은 제한 속도를 재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운전자들은 과속이 아닌 도로 상황에 맞는 제한 속도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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