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이자 동양학자인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가 5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있은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에서 '영남의 명문가와 선비정신'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오랜 기간 핍박받은 정치적 상황이 자율적 경계로 이어졌다. 그게 몸가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 역사의 변곡점으로 두 사건을 꼽았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사건으로 충청도와 전라도의 양반 계층이 거의 사라졌다. 반면 경상도는 상대적으로 많이 살아남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역사적 경험치가 크게 달라진 까닭이었다.
그는 "동학농민운동은 특히나 평등 사상, 인내천 사상을 강조한 일대 사건이었다. 전체 사망자 30만 명 중 20만 명이 전라도에서 나왔다. 영남 지역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며 "지주와 소작농 간 계급 갈등이 격화되면서 중간지주, 마름 역할을 하던 이들이 많이 죽었는데 들판이 피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학농민운동과 6·25전쟁 이후 한반도가 전체적으로 다이내믹하게 급변했지만 영남 지역은 큰 변란에서 보호받은 지역이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많은 명문가들이 살아남게 되면서 이점도 컸다며 그는 논지를 이어갔다. 특히 공동체로부터 존경받은 명문가를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명문가의 속성은 사기를 안친다는 거다. 프라이드에 손상이 가는 짓은 자발적으로 안 한다"며 "6·25전쟁을 겪었음에도 불타지 않은 집은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공동체에 베풀었다는 뜻이다. 위세 부리고 갑질한 집들은 제일 먼저 불태워졌다"고 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영남 지역 남인들의 선비정신도 불려 나왔다. 인조반정 이후 노론 세력에 250년 이상 칼바람을 맞은 이들이 버텨낸 동력은 '자율적 경계'였다.
"조선시대 남인으로 영의정에 마지막으로 올랐던 이는 서애 류성룡이었다. 안동 내앞마을 의성 김씨들은 강골인 노론 인사가 안동부사로 올 때마다 '우리를 또 얼마나 쥐 잡듯 잡으려 할까' 하며 대책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행동거지를 조심한다는 게 버릇이 됐다. 트집 잡히지 않으려면 서로 간에 자율적 경계를 해야만 했다. 어디 가서 함부로 말하지 않고, 말도 많이 하지 않았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고, 정적에게 꼬투리를 잡힌다는 것이었다."
명문가의 특별한 태도로 '겸손'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안동에는 공덕비가 별로 없다. 자랑을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퇴계의 가르침이 곳곳에 스며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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