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정식 요리사 천운영의 기억이 소설가 천운영에게 닿자 '소설 돈키호테'가 코와 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원작자인 세르반테스가 상상이나 했을까. '소설 돈키호테' 속에 등장하는 먹을거리 하나하나의 사연과 레시피, 심지어 더 맛있게 먹는 법을 써낸 책이 나온 것이다.
'돈키호테의 식탁'이란 제목에 걸맞은 식탁 위 요리들이 대기중인 건 아니다. 풍찬노숙에 가까운 여정을 이어간 돈키호테와 산초였기에 '기사의 밥, 걸인의 찬'에 가깝다. 그럼에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야 만날 수 있는 스페인 음식문화다. 호기심은 폭발한다. 종국에는 스페인 요리 한둘쯤 우물거리고 싶은 욕구가 침샘 터지듯 솟구친다.
소설 '돈키호테'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뺨치는 '먹는 이야기'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가 모험 중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소설 속에 펼쳐놓는데 천운영 작가는 여기에 집중했다. 목동들이 돈키호테와 산초에게 접객용으로 내놓은 염소 육포와 꿀땅콩에, 염장 대구(大口)를 실어 나르던 마부들의 대구 조리법 등에 말이다.

간혹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상세하게 묘사하기도 하는데 은근히 설득력 있다는 게 마력이다. 그런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작가는 '소설 돈키호테'를 씹어 먹듯 꼬박 일 년에 걸쳐 소설에 나오는 음식 목록을 작성하고, 그 음식을 찾아 스페인을 누볐다고 한다.
심지어 그 경험은 실제 식당 개업으로 이어지는데, 2016년 서울 연남동에 스페인 가정식 식당 '라 메사 델 키호테'('돈키호테의 식탁'이라는 뜻, 2018년 문 닫음)를 열고 운영했었다. 그는 이런 경험을 십분 발휘해 '돈키호테의 식탁'과 자매품이 아닌가 싶은 산문집도 최근 써냈다. 그게 등단 이후 첫 산문집인 '쓰고 달콤한 직업'(마음산책, 1만5천500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돈키호테의 식탁'과 '쓰고 달콤한 직업' 두 권을 세트로 판매중이다.
요리하며 만난 사람들을 소재로 삼은 식당 운영기, '쓰고 달콤한 직업'을 살아있는 르포 형태의 산문집으로 분류한다면 '돈키호테의 식탁'은 '소설 돈키호테'를 더 재미있게 읽는 법을 알려주는 가이드북에 가깝다. 물론, 책의 부제가 '소설 돈키호테 행간 읽기'가 아닌가 뒤적여 봤지만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소설 돈키호테'를 펼쳐들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요리 얘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슬슬 소설 속 특이한 장면에도 훈수 두듯 설명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이렇게 풀이하는 게 보다 적확할 거야"라는 듯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분석을 읽노라면 죽은 세르반테스가 천상에서 반색할 만큼이다.

음식에 관련한 자신의 경험도 듬성듬성 썰어내 에피타이저로 얹는다. '아호아리에로'를 비롯한 염장 대구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개인적 경험인 '북어 무곰'의 추억을 퍼갖고 온다. 도토리 먹고 자란 흑돼지로 만든 '이베리코 데 베요타'를 부드럽게 설명하려 엄마 친구의 시댁 어른이 미국에서 주웠다는 도토리 얘기까지 호출할 때는 정말이지 단어 하나를 외우게 하려고 온갖 연상법을 다 동원하는 교사들의 표정이 겹친다. 혼을 실어 설명하는 작가의 의지가 읽힌다.

이런 역작의 시초는 한국문학번역원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스페인에 갔던 천운영 작가는 그곳에서 '소설 돈키호테'에 빠져 소설에 등장한 음식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우연한 계기가 판을 크게 벌이기 마련이다. 그는 책 본문에서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좀 미친 짓이었다. 돈키호테와 같았다. 스페인어 전공자도 아니고 요리사도 아닌 내가 돈키호테의 음식을 찾아나선다는 것. 그건 어떤 외국인이 전주에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고서는 그게 '홍길동전'에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전국 팔도를 누비며 홍길동의 자취를 쫓아 조선시대 음식을 찾아다니는 일과 비슷했다." 263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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