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에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밖을 나간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리기를 하거나 산책 삼아 동네 뒷산을 오른다. 가벼워진 몸에 알맞게 생각을 비운 뇌는 글을 쓰기 딱 적당하게 유연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을 쓴다. 오전 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5매만 쓰자, 라는 꿈을 아침마다 꾼다.
으레 작가라고 하면 이 정도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은 기본 능력으로 장착해야 할 것만 같은데 실상 그렇지 않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타고 나길 저녁형 인간인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는 일이 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최근에 유행하는 '미라클 모닝'을 따라잡기 위해 아침마다 사투를 벌인다는 건 널리 알리고 싶다.
아침 기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하루가 24시간에서 30시간쯤 되는 기분이랄까. 마치 보너스 타임을 더 받아낸 게임 캐릭터가 된 것만 같다. 그래서 타고난 저녁형 인간인 내가 아침형 인간을 따라잡으려 아침마다 싸우는 것이다. 일어나기만 하면 6시간을 보너스로 더 얻을 수 있는데. 왜 나는 아침마다 이토록 일어나지 못하나.
그래도 이 싸움에 패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일주일에 두어 번 쯤은 제때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침 기상에 성공하면 그날은 글을 쓰기 좋은 출발이다. 그러나 변수는 더 남았다.
나는 식물 속성을 가진 인간이다. 해가 뜨지 않으면 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계획된 아침을 맞이해도 맑은 하늘이 아니라면 소용없다. 새파란 하늘에 빛나는 태양이 있어야지만 글을 쓸 기분이 든다. 이처럼 글을 쓰기 위해 마음 먹는 일은 글을 쓰는 일보다 더 어렵다.
그래도 나는 원고 작업률이 50퍼센트는 된다고 생각했다. 맑거나, 흐리거나. 날씨는 두 종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맑은 날에만 글을 써도 50퍼센트는 이룬 것 아닌가, 하고 뼛속까지 문과는 그런 계산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건 나의 오판이었다. 날씨는 두 종류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날씨는 네 종류다. 해, 구름, 비, 눈. 이런 분류 안에서 내가 글을 쓰는 때는 오직 하나, '해' 뿐인 거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식물 속성이라는 변명 안에서 얼마나 안전하게 게으름을 부렸는지 자백하는 동시에 반성하고 있을 따름이다.
황야의 무법자 세계관인 19세기 미국의 서부. 그곳의 바(bar)에는 "피아니스트를 쏘지 말아주세요. 그도 열심히 연주하고 있습니다. (Please don't shoot the piano player. He's doing the best that he can.)" 라는 문구를 피아노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말이다. 아직은 내게 겨눈 총구를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고 게으름을 반성하는 소설가도 흔치 않으니. 해가 뜨기를 기다리기보다 해가 떴던 기억에 의지하려 한다. 좀 더 쓸 얘기가 남아 있으니, 아직은 이 소설가를 쏘지 말아 주세요.
이나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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