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 목덜미 잡으면 학대?

고양이 목덜미를 잡는
고양이 목덜미를 잡는 '클립노시스'는 가족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반려 고양이에게 활용하기에는 부적절한 방법이며, 이러한 시도가 반복되거나 지속되면 고양이는 위축되고 가족들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사진 pixabay

네로(코숏·3y)의 엄마와 아빠가 가벼운 논쟁을 벌이셨다.

네로는 만성 잇몸병 때문에 재발할 때마다 약을 먹여야 하는 처지인데, 두 집사분은 네로에게 약 먹이는 과정을 곤혹스러워하셨다.

그러다 남편분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클립노시스'(clipnosis)에 대해 알게 되었고, 약을 먹일 때 그 방법을 사용하니 한결 수월하다고 주장하셨다.

반면에 아내분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는 것은 고양이 학대라고 주장하셨다. 남편분은 약 먹일 때마다 네로를 타월로 둘둘 말아 보정하고 약 먹이는 것보다는 네로에게도 덜 스트레스받는 방법이라며 재차 주장하셨다.

고양잇과 동물인 어미 사자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새끼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늘어뜨려 어미가 이동하기 편하게 도우며 울지도 않는다. 주변의 포식자로부터 들키지 않고 새끼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려는 생존 전략이 유전자 속에 각인된 셈이다. 사진 pixabay
고양잇과 동물인 어미 사자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새끼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늘어뜨려 어미가 이동하기 편하게 도우며 울지도 않는다. 주변의 포식자로부터 들키지 않고 새끼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려는 생존 전략이 유전자 속에 각인된 셈이다. 사진 pixabay

고양이 클립노시스는 목 뒷덜미에 클립을 집어두면 고양이가 일시 정지된 듯 동작을 멈추는 독특한 습성을 일컫는다.

엄마 고양이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관찰해보면 새끼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축 늘어져 있다. 어미가 새끼의 목덜미를 물면 새끼는 자연스레 어미에게 몸을 의지하며 반항하지 않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뿐 아니라 강아지와 설치류 등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어미가 새끼를 옮기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래서인지 목덜미 피부는 유난히 잘 늘어나면서도 통증을 덜 느끼는 부위이기도 하다.

어미가 새끼를 이동시키는 상황은 주변의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일 텐데, 목덜미를 물린 새끼는 어미에게 반항하거나 울지도 않기 때문에 포식자로부터 안전하게 새끼를 이동시킬 수 있다.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습득된 생존 전략이 유전자 속에 각인된 셈이다.

고양이는 성장 후에도 이러한 본능이 좀 더 강하게 남아 있으며 다 자란 고양이 중에 상당수 개체가 목덜미를 부드럽게 잡으면 반항을 하지 않고 일시 정지된 듯 멈춤 상태를 유지한다.

반면에 목덜미를 무는 행동은 번식과 다툼 과정에서는 좀 더 다른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발정기 수컷이 교미 과정에서 암컷의 목덜미를 무는 행동은 암컷의 허락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새롭게 합사하려던 고양이들 간의 다툼 과정에서 상대의 목덜미를 물려는 행동은 서열상 우위를 보이려는 행동으로 상대의 목덜미를 물면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어느 경우든 목덜미를 물리거나 잡히는 고양이의 입장은 행복하지 않다. 불편하며 제압된 상황으로 인식하며 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고양이 클립노시스는 고양이를 학대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 역시 보호자들에게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는 행동은 자제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특히 목덜미를 잡은 채 체중이 나가는 다 자란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 행동은 통증이 유발되고 피하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목덜미를 잡힌 고양이가 가만히 있는 것은 편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긴장하고 있음을 분명히 이해하여야 한다.

고양이 클립노시스가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공격성이 강한 길고양이를 컨트롤하거나, 검진과 채혈 과정을 심하게 거부하는 고양이를 대해야 할 때 도움되기도 한다. 과민하고 공격적인 고양이를 강압적으로 보정하는 과정에서 고양이가 다치거나, 구조자 또는 간호사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압적인 보정 또는 진정 주사 마취를 결정하기 전 한 번쯤 클립노시스를 시도하는 편이다. 반응을 관찰하고 다행히 클립노시스 효과가 두드러진다면 처치를 최대한 신속하게 마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네로 보호자분에게도 이러한 경험을 얘기드리며 고양이의 입장도 대변해드렸다. 클립노시스는 가족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반려 고양이에게 적용하기에는 부적절하며, 이러한 시도가 반복되거나 지속하면 고양이는 위축되고 가족들을 두려워할 수도 있음을 설명해 드렸다.

가정에서 약을 먹여야 하거나, 안약을 넣거나, 발톱을 깎거나, 상처 소독을 해줘야 하는 긴박하고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클립노시스를 시도할 수는 있지만, 고양이가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시고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처치 전후에는 고양이를 충분히 위로해 주어야 한다.

수의학박사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 SBS TV 동물농장 동물수호천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 원장은 개와 고양이,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치료한 30여년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와 반려동물문화를 알리고자 '동물병원 24시'를 연재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동물명은 가명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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