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K는 50대 회사원이다. 쥐뿔도 없지만, 당당하게 살아왔다. 불의한 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사회와 직장에선 늘 약자 곁에 있었다. 아부 대신 성실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K는 학창 시절, 하늘의 잔별을 보며 눈물짓는 문청(文靑)이었다. 최루탄에 맞서 대자보를 쓴 '비주류 운동권'이었다. 민주화 이후 '문학'을 접고, '밥'을 선택했다. 사회는 진보하고, 삶은 나아질 것이란 믿음으로 살았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돈에 집착하지 않았다. 요행도 바라지 않는다. 재테크는커녕, 복권 한 장 산 적이 없다. 돈은 땀으로 버는 것이라 생각했다. "무일푼이었는데도 취직해서 결혼했고, 아이 낳아 잘 키우고, 화목하게 살고 있다. 남 부러울 게 없다." K는 '그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런 K가 술자리에서 흔들렸다. 아파트가 낡아 새 집 마련 계획을 세웠다가 포기했단다. '미친 집값' 때문이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2억2천만 원짜리, 저축한 돈은 3천만 원. 인근에 있는 같은 평수의 아파트 분양가는 6억 원. "자녀 학비 등 돈 들 일이 많아 이사를 몇 년 미뤘는데, 그새 집값이 이렇게 오를지 몰랐다. 대출받고, 이리저리 빌려서 분양을 받아도 그 순간 '하우스 푸어'다. 자식 뒷바라지 남았고, 노후는 불안하다. 답이 없더라. 우리는 그럭저럭 산다고 치자. 자식은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야 한다. 살던 집 한 채는 물려줄 줄 알았는데, 헛된 꿈이었다. 자식에게 미안하다. 누구는 아파트 몇 번 이사해서 수억 원 벌었고, 부모님 유산으로 땅 사고 아파트 샀다고 한다. 허탈하다. 나보다 없는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속이 홧홧했다. 술만 연거푸 따랐다.
자산소득 양극화로 빈부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 집값 폭등이 큰 원인이다. 집값은 자식 세대에게 더 절망적이다. 청년 세대는 부모 도움 없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는 결혼 기피로 이어진다. 결혼은 소득수준과 상관관계가 크다. 2018년 30대 남성 근로자 혼인율을 보면, 상위 10%는 86.3%이나 하위 10%는 20.3%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그 비율이 각각 92%와 57%였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사라졌다. 결혼해도 가난을 물려주기 싫다면, 아이 낳기를 꺼리게 된다.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보자. 자식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서 긍정의 응답은 2009년 48.3%에서 2019년 28.9%로 크게 줄었다.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국민은 각자도생하고 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도 불사한다. 국가는 국민 행복보다 국가 성장에만 주력하고 있다.
국민 행복은 시대정신이다. 출발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 개선, 공정과 정의의 실현이다. 우선 자산소득과 근로소득 격차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정치적 실험도 따라야 한다.
국민의 삶을 외면한 정치, 민생에 무능한 정치는 도태된다. 이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됐다. 승자도 패자도 긴장하고 쇄신해야 한다. 진보-보수의 사이비 진영 논리는 후지다. 국민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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