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위선·내로남불은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다. 특정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 맞다." 개인적으로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최대 희극적 장면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관위가 집권 여당을 도와주기 위해 그런 단어들을 금지한 건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선관위의 뜻과 달리(?) '무능·위선·내로남불'은 민주당을 연상시키는 말로 국가기관의 인증을 받게 되었다. 김태년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선거 직전 다급하게 "내로남불 자세도 혁파하겠다"고 자인한 걸 보면 선관위가 없는 말을 한 건 아닌 듯하다.
하지만 현 정권이 모든 일에서 무능하거나 항상 위선과 내로남불로 일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대 정권 치고 유능하고 정직하고 상대보다 자신에게 더 엄격했다는 평가를 받은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범여권에 180여 석을 몰아준 국민이 겨우 1년 만에 회초리를 든 반전에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현 집권 세력의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위선보다 오만이, 무능보다 무례가, 내로남불보다 뻔뻔한 태도가 국민의 분노를 자초했다는 말이다.
4·7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관심이 쏠린 서울과 부산 모두 전임자들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선거였다. 1, 2위 도시의 시장들이 동시에 성 추문 의혹으로 사퇴하거나 사망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치 않다. 대한민국의 권력을 모두 차지한 집권 세력의 오만함이 근본 원인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견제가 사라지면서 해이해진 권력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사건의 뒤처리 역시 집권층의 오만함을 보여준 과정이었다. 애초부터 '무공천'을 명시한 민주당 당헌대로 후보 추천을 포기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게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당 혁신 차원에서 국민과 약속한 규정이다. 당헌을 바꾸면서 이낙연 전 대표는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했다. 문 대통령도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다"며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국민 앞에 죄송하다거나 송구하다는 입에 발린 소리조차 없었다. 국민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의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승부는 거기서부터 갈렸다고 봐야 한다. 스스로 말한 대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 분노를 부른 부동산을 보자. 규제 일변도 정책이 부동산 폭등을 부른다는 비판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고집했다. 더 큰 문제는 과도한 세금이다. 걱정하고 분노하는 국민에게 여권의 질타가 이어졌다. "특수 사례를 과도하게 부풀려서 일반화한 것" "세금 폭탄이 아닌 공정성 강화" "제발 호들갑 떨지 말고, 국민들을 불안 속으로 끌고 가려는 짓 그만 멈추라"는 발언들이다. "세금 부담이 어려운 사람은 (그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집 한 채 가진 보통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조롱하거나 국민을 훈계하는 말들이다. 맡겨진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머슴들이 나무라는 주인에게 눈을 부릅뜨고 호통치는 형국이다. 이러고도 주권자인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으니 그거야말로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선거 후 청와대와 여당은 더욱 낮은 자세로 혁신하겠다는 다짐을 내놓고 있지만 미덥지 않다. 사람을 바꾸고 제도를 손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만하고 무례한 태도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정의 대 불의'라는 집권 세력의 터무니없는 인식을 바꾸지 않은 한 고치기 쉽지 않다. 여전히 국회 180석을 보유한 상황에서 어깨에 힘을 빼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반성한다고 말하면서 '언론 탓'을 하거나, 검찰 개혁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그렇다.
그래도 태도를 전환해야 하는 게 맞다. 집권 세력을 위해서도, 정치에 의해 편이 갈리고, 여러모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서도 그렇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국민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깨우칠 때까지 가르칠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구호를 패러디하자면 이런 가르침 말이다. "문제는 태도야, 이 바보야!"(It's the attitude,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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