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여당은 민심을 읽었을까?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이학영, 김영진 비대위원 등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비상대책위원장(왼쪽부터), 이학영, 김영진 비대위원 등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여·야가 다른 듯 비슷한 모습이다. 내가 잘해서 이겼는지, 상대가 워낙 못해서 이겼는지 구분도 못 하는 야당의 행태를 보노라면 아직 정신 못 차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선거에 진 쪽도 마찬가지다. 망해 가는 집안의 특징이 서로 네 탓이라며 쏘아 대는 내부의 고함 소리가 담장을 넘는 것이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 따끔한 소리를 하고, 나머지는 입맛이 씁쓸해도 '그래 네 말이 맞다'며 미래를 도모한다면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를 보노라면 11개월도 채 남지 않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제대로 치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실 이번 선거 전부터 예견됐던 바이기도 하다.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여 원인을 꼼꼼히 따져보고, 뒤집지는 못할지언정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옳았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특정 연령대를 싸잡아 무식하고 판단력이 흐린 집단으로 매도한 데다 애초에 약 900억 원을 들여 선거를 치르게 된 원인 제공자의 처절한 반성 따위는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그늘이 깊다며 딴청 피우는 꼴이다.

아슬아슬한 승부도 아니고 '열성 지지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면, 즉 국민들이 '더 이상 그대들의 말장난에 속지 않겠다'고 일갈했다면, 이제는 그 해괴한 백일몽에서 깨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당내 소신파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를 당을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면서 찢어진 우산 아래 다시 뭉치라고 윽박지른다. 강성 지지자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이들을 '초선 5적' '초선족' 등으로 부르며 의리를 저버렸다고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SNS 등에 '좌표 찍기' 식으로 이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공유돼 하루 4천~5천 통의 비난 문자메시지가 쇄도했다고 한다.

선거 결과는 보수와 진보의 싸움에 대한 승부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고, 선거라는 민심 측정기를 통해 방향성의 옳고 그름을 평가받을 수는 있겠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정의라는 잣대로 압도하는 개념이 아니다. 한쪽이 정의이고 반대편이 불의여서, 마치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깔끔한 구도의 싸움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정치인이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서 자녀의 입시 비리는 당연히 지탄의 대상이며, 성범죄는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할 중죄이다. 환경 문제는 방향성과 속도의 문제여서 논의와 타협이 필요하다. 원전은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게 옳지만 대체에너지 발전이 가져올 환경파괴와 준비의 적정성을 슬기롭게 조율해야 한다.

남북 관계는 민감하다. 한반도에 과도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결코 득이 될 리 없지만 북측의 막무가내식 폭언과 생떼까지 인내하면서 평화롭게 지내자고 손을 내미는 것도 그리 현명한 처사로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문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부동산 문제야말로 접근법에 따라 판을 한 번 갈아엎자는 식의 폭압적인 정책이 나올 수도, 비록 느리고 답답해 보이지만 점진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재보궐선거의 결과는 보수의 승리와 진보의 패배가 아니다. 민의를 외면한 채 아집에 사로잡혀 독단으로 치달은 정치 세력에 대한 응징이다. 이번 선거에선 진보를 표방한 집권 여당이 그 대상이었다.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세상을 뒤엎겠다고 덤벼들면 보수, 진보 어느 진영이 정권을 잡아도 국민들은 불행해진다. 오죽하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까지 나올까. 여당은, 그리고 야당은 민심을 알아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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