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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사건' 이후…"고객들 문 안 열어" 난처해진 집배원

대면 기피 등기우편 서명 못 받아…시민들은 주소 적힌 송장 지우고, 일부는 파쇄기 구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김태현이 피해자가 무심코 노출한 집 주소를 이용해 주거지에 찾아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면 배달이 원칙인 집배원들이 난처해하고 있다.

수령인이 없어도 일정 장소에 놓고 갈 수 있는 택배와 달리 등기우편물은 비대면 신청을 따로 하지 않는 이상 수령인의 서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태현 사건 이후 고객과 만남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범죄 여파로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다양한 방법들도 관심거리가 됐다.

대구 집배원 김현우(53) 씨는 "등기우편은 대면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김태현 사건 이후에는 문을 잘 열어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 커졌다"면서 "결국 고객을 만나지 못해 방문통지서를 붙이는 일도 잦아졌고, 고객이 불편을 무릅쓰고 우체국에서 직접 수령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 '집배원 아저씨야'라고 신분을 밝혀도 아이들만 있을 때는 반드시 부모님과 통화한 후에 문을 열어주는 경우도 늘었다"고 했다.

집배원 박오상 씨는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더 진이 빠진다. 배달할 때마다 집배원 복장을 갖춰서 가지만, 고객 입장에선 그래도 낯선 사람이다보니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쓴다"고 했다.

집배원 정모(49) 씨는 "일반 택배와 달리 등기우편은 수령인이 따로 비대면 배달로 설정하지 않으면 반드시 만나서 서명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별도 설정을 하지 않고, 개인정보가 많은 등기우편을 아무 데나 두고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9일 오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나오다 마스크를 벗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시민들은 자신의 주소가 적힌 택배 송장, 배달영수증 등을 꼼꼼히 지우거나, 개인정보를 지울 수 있는 가정용 미니 파쇄기를 구매하기도 한다.

구글 트렌드(0~100)에 따르면 김태현 사건 이전인 지난달 14일 기준 0이던 '파쇄기'의 검색어는 최근 65까지 급증했다. 이 업계 관계자는 "파쇄기 문의가 최근 2주 사이 30% 늘었다"고 했다.

박혜지(30) 씨는 "예전에도 내 주소가 나오는 것이면 가위로 하나하나 잘라서 쓰레기통에 나눠버렸는데, 지금은 이에 앞서 매직펜으로까지 덧칠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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