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으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문을 두드려요. 문을 열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물어봐요. 우리를 트라우마 환자로 몰아가는 상담이 도움이 되겠어요? 이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좋아요."
세월호 참사 후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세월호 특별법' 서명운동을 위해 대구에 오셨던 유가족의 하소연이다. '날카로운 전문가'보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줄 '따뜻한 이웃'이 더 필요해 보였다.
우리 동네 성당에 여장을 푼 유가족들과 허름한 식당에서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황망하고 미안하고 분해서 함께 울었다.
"우리의 억울한 이야기를 처음 해요.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모님들께서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에게 노란 리본을 달아주셨고 우리는 꼭 안아드렸다. 유가족들의 티셔츠에는 채 피어보지 못한 채 스러져간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 26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과 상처가 마음에 남으면 트라우마가 된다. '위험 사회'인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는 이제 일상용어가 됐다. 트라우마로 인해 심각한 증상이 지속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한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의학적 치료만으로 완치되기 어렵다. 심리적 외상의 원인이 된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지속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트라우마 치유의 시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트라우마는 잠복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재발할 수 있고 시공간을 초월해 전이되기도 한다. 유가족을 향한 '이제 그만하라'라는 비난과 막말은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를 덧나게 한다. '슬픔이 끝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사회적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 심리학자 마크 엡스타인이 저서 '트라우마 사용 설명서'에서 한 말이다. 슬픔을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돕는 것이 진정한 트라우마 치유의 길임을 뜻한다.
"2014년 여름 특별법 제정을 위해 대구에 처음 왔을 때 많은 분의 위로와 격려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대구는 제게 친정 같은 곳입니다."
지난 4월 9일, 세월호 참사 7주기 대구 시민문화제에 참석한 유가족의 말씀이다. 유가족과의 첫 만남 이후 대구에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함께하려는 풀뿌리 시민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주부, 학생, 교사 등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노란 리본을 만들고, 서명을 받고, 유가족과 자주 만나며 연대해왔다. 상처받은 이들을 향한 이러한 공감과 지지 역시 트라우마 치유의 첩경이다.
가끔 교복에 노란 리본을 달고 진료실로 들어오는 학생들을 본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그리고 참 고맙다.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던 유가족이 누군가의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는 말씀도 들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서로 확인하는 것 또한 트라우마를 함께 치유하는 좋은 방법이다.
일곱 번째 4월 16일이 다가온다. 이제는 별이 된 아이들과 했던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떠올리며 진료실로 향한다.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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