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 글/ 문학과 지성사/ 2010년)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함을 노래로 떨쳐내는가 하면 누군가는 걷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운동하기에는 산책만 한 것이 없다. 걸으면서 사람들은 정서적 안정을 찾고 고민을 해결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때 구보 즉 걷는 것을 즐긴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박태원의 소설에 나오는 구보씨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하루 동안 서울 거리를 다니면서 풍경과 사람들을 관찰하며 생각한 것을 적은 작품이다. 일상 생활을 기록하여 소설로 만든 것이다.
구보는 일제 강점기 때 동경 유학까지 한 지식인이나 글만 쓰고 있는 백수다. 정오에 집을 나와 서울 거리를 배회하다가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고 다방에는 자신과 같은 우울한 룸펜 젊은이들이 득실거리는 것을 본다. 사회부 기자 친구를 만난 구보는 소설 주인공이 작가보다 늙었다는 평을 듣는다.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작가이지만 땅을 디디면서 걷다 보면 식민지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시대 취직되지 않는 지식인, 즉 채만식의 소설처럼 팔리지 않는 기성복 같은 레디메이드 인생들. 그러기에 우울하고 나이보다 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다.
구보가 떠올리는 생각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기술되고 있어 이야기가 유기적 연관성 있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경성역에 가면 행복해질까 싶었으나 군중 속의 고독만 느낀다. 문인들조차도 황금에 미쳐 있는 황금광 시대. 구보는 냉소적이고 열등생이었던 중학 동창이 금시계를 자랑하는 모습에 물질 만능주의에 젖은 현실을 비판한다. 1930년대는 식민지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어 비인간화, 자본주의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부터 집엘 가서 무얼 할 생각이오?" 그것은 어리석은 물음이었다. '생활'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제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 할 게다. 벗은 구보와 비겨 볼 때 분명히 생활을 가지고 있었다. 구보는 기자 친구와 헤어지며 친구의 생활 있음을 부러워한다. 구보는 진정 인생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내일부터, 내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땅을 디디고 거리를 걸어다니며 생각을 했기에 고독한 구보가 생활을 하리라는 힘찬 결말을 얻어낸 것이 아닐까 한다. 우울한 코로나 시대에 우리도 소설 속 구보가 되어봄 직하다.
이 소설의 작가 박태원은 1930년대 이상과 함께 구인회의 일원이며 모더니즘 소설 분야를 개척한 소설가이다. 구보가 단장과 공책을 들고 거리를 나와 관찰하는 것은 작가의 창작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소설 창작 과정이 바로 작품이 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평범하고 사소한 그의 일상이 소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을 읽고 우리도 구보처럼 우리의 일상을 소설로 그려내는 소설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내어본다. 코로나로 인해 매일 매일의 사소한 일상이 더 소중하고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김광웅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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