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2011년 장편소설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한 황현진 작가가 첫 소설집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을 냈다. 등단 이후 10년 동안 문예지, 문학웹진, 엔솔로지 등에 발표해온 작품 11편을 묶었다. 그가 발표한 단편은 지금까지 20편 정도다.

대중에 선보인 첫 작품이 장편소설이었고 이후에도 '두 번 사는 사람들', '호재'를 비롯한 장편과 '달의 의지', '부산 이후부터' 등 중편이 상대적으로 더 알려졌다. 그러나 수타 짜장면 맛집이 간짜장에서도 평타 이상의 맛집이라는 건 신뢰도 높은 가담항설이다. 장편에서 그가 끌어나가던 흡입력은 단편에서도 유효하다.

문학작품의 첫 인상은 대개 제목과 표지에서 결정된다. 출판사가 책을 펴낼 때 작가에게 '답정너'에 가까운, "작가님이 보시기에 어떤 게 더 나을까요"라는, 선택지를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우대와 인성의 비상관 관계를 조언하는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격언은 격언의 영역일 뿐이다.

그런데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은 표지 사진이 곧 소설집을 통째로 관통하는 메시지나 마찬가지다. 위태로워 보인다. 물이 담긴 유리잔이 45도 정도 각도로 쏠린 채 탁자 모서리에 걸쳐 있다. 물이 쏟아지기 일보 직전인데 물의 장력, 컵의 이동 방향, 속도 등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낙하 직후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날 처지다. 만일 탁자 아래 바닥이 푹신한 카페트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호텔 우산. 출처=THE RITZ-CARLTON
호텔 우산. 출처=THE RITZ-CARLTON

'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이라는 제목과 일치하는 작품, 표제작이 없다. 통상 소설집이라면 작품별 첫 출전을 명기해놓은 '발표 지면 리스트'도 없다. 11개 단편의 첫 출현지가 어디인지 궁금해 보물찾기 하듯 폭풍 검색한다. 한 편 읽고 찾고, 한 편 읽고 찾고. 11번 반복하기도 전에 슬슬 전략적 비노출이라는 확정적 결론에 이른다. 원제와 달라진 작품을, 원작이 일부 편집되거나 수정된 작품을 비교해 읽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작가는 "10년 된 작품들이다 보니 많이 고치고 제목도 바꾸고 그랬다. 발표 지면 수록이 의미 없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실상은 그랬다.

소설집의 단편들은 대체로 낙관주의자의 내면 흐름으로 읽힌다. 주변 환경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소설집을 통독한 뒤 정신승리할 수 있을 만큼이다.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해석으로 가면 너무 나간 것이고, 뭐 이런 개떡 같은 상황이 다 있나 싶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거다.

여자 후배가 이혼한 사실을 자신만 몰랐다며 광분하는 팀장의 특종욕구(비밀은 한 가지), 자존심에 상처를 입자 후배의 정수리에 침을 뱉은 선배의 자격지심 분노(내가 원했나봅니다), 딸을 미성년 성매매에 내몰면서 할인을 요구하는 고객의 지갑을 여는 아버지의 상도덕(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 화류계에서 만난 업주 남편의 버리지 못하는 습성(언니의 십팔번) 등을 마주하면 시쳇말로 '답이 안 나오기 마련'이다.

비밀. 출처=게티이미지
비밀. 출처=게티이미지

그러나 황현진 작가는 '언니의 십팔번'에서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적어도 불행에 대해서는 한입인 양 동시에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불행하려고 모여 있는 게 아니라 불행하지 않으려고 계속 남아 있었다. 행복이라고 말하긴 그렇고, 좀 괜찮아지려고, 나아지려고 선택한 곳이었다"라고.

소설집을 다 읽고 난 뒤, 풀긴 다 풀었지만 채점하면 틀릴 것 같은 수학 문제를 보는 기분이다. 최선을 다해 사는데 고작 이렇다니. 소설가 최진영의 발문 '이렇게 우리는 다행입니다'의 일부도 그 기분에 맞장구치는 듯하다.

"선의와 악의, 걱정과 욕심, 관심과 폭력, 불운과 불행이 경계 없이 아슬아슬하게 뒤섞여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물의 뒤를 따라가다 끝에 이르면 깔끔한 개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남는다." 290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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