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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언미의 찬란한 예술의 기억]1966년 4월, 흑백사진 속 그날처럼

1966년 4월 전원합창단·대구바레아카데미 공연 사진
1966년 4월 전원합창단·대구바레아카데미 공연 사진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

원로 합창지휘자 장영목(1934~) 선생님이 기증하신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한 장의 작은 흑백 사진이 눈에 띄었다. 무대 위에는 연미복을 차려입은 합창단 40여 명이 노래하고 그들 앞에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뒷모습이 함께 찍힌 걸로 보아 공연 실황 사진 같았다. 사진을 뒤집으니 '1966년 4월 11일 대구방송국 공개홀에서 열린 대구 최초 합창과 발레 합동공연, 전원합창단(지휘 장영목), 대구바레아카데미(안무 김기전)'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1966년에 합창과 무용의 컬래버레이션 공연이라니 놀라웠다. 다시 장 선생님의 자료에서 해당 공연의 팸플릿을 찾아 펼쳤다. 인사말에 장영목 지휘자는 '신의 가장 위대한 예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라면 인생이 곧 노래하고 춤추는 갈대라고 말하고 싶다', 김기전(1935~) 안무자는 '노래와 춤은 예술발전의 기원과 같은 형태이며 과거 무용 표현의 양식을 대폭 변경해서 합창과 손잡은 무대를 선보인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전원합창단과 대구바레아카데미는 여러 차례 공동 무대를 기획했고, 1981년 나란히 대구시립합창단, 대구시립무용단 창단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1964년 대구시립교향악단이 첫 시립예술단으로 이름을 올린 이후 17년만이었다. 창단과 동시에 시립합창단과 시립무용단은 대구직할시 승격 축하무대에 함께 올랐다. 장 지휘자와 김 안무가는 "장르가 달라도 어려운 시대 상황을 딛고 예술인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립' 예술단체를 창단해야한다는 뜻이 같았기에 힘을 모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장영목 지휘자는 1958년 아마추어 합창단원들을 모아 전원합창단을 창단했다. 공적인 예산 지원이 없었기에 순수하게 후원자들을 모아 모든 경비를 마련해야 했다.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그들이 단원이 되고 또 후원자도 되었다. 전원합창단은 이후 아카데미합창단으로 확대됐고 1980년, 대구시립교향악단과 협연무대를 기획해 헨델의 '메시아' 전곡을 원어로 연주했다. 이 연주는 1981년 대구시립합창단이 창단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된다.

창단 초기에는 우선 장영목 초대지휘자와 반주자만 상임단원으로 정식 승인을 받고 출발했다. 공연을 위해서는 아카데미합창단 단원이 함께 무대에 올라야했다. 장 지휘자는 모든 공연에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전문 합창의 예술성을 알렸다. 매년 5명 정도씩 대구시립합창단단원수를 늘려나갔다. 그 결과 1988년 그의 퇴임 무렵에는 40명 이상의 정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66년 전원합창단 ·대구바레아카데미 팸플릿
1966년 전원합창단 ·대구바레아카데미 팸플릿

한편, 군예대(한국전쟁 중 군대 내 편성된 공연조직) 출신의 정막 선생과 결혼하면서 대구에 정착한 김기전 안무가는 1957년 '정막 무용 연구소'를 열었다. 1961년 1월 무용학원 '대구바레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한국무용은 고전무용이라 했고 창작무용은 발레라는 이름으로 통칭됐다. 대구바레아카데미는 1962년 11월 수강생들과 함께 KG홀에서 첫 발표회를 연 이후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발표회를 열었다.

김기전 안무자는 1977년경부터 시립무용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고전무용을 하면 한 가지만 할 수 있지만 현대무용을 하면 창작을 하기 때문에 고전에서 현대까지 뭐든 할 수 있으니 더 유리하다"고 장담하며 행정기관을 설득했다. 그 결과 1981년 전국 최초의 공립 현대무용단으로 대구시립무용단 창단을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초기에는 단원들도 비상임으로 운영됐고 안무자와 훈련장만 월급이 지원됐다. 대구시민회관에 정식 연습실을 얻기 전까지 삼덕동 학원, 시청 뒤 무도장 등을 오가다가 분도 소극장을 인수해서 연습 공간으로 활용했다. 상임단원 하나 없이 시작했기에 단원 숫자부터 늘려가야 했다. 제대로 된 공연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무용 교사들을 무대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남성 출연자가 필요할 때는 연극전공자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대구시립합창단과 대구시립무용단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무용단은 4월 27일부터 5월 1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창단 40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열고, 합창단은 4월 29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창단 40주년 기념 연주회 무대를 마련한다. 이번 기획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1966년 4월 흑백사진 속 그날처럼, 1981년 창단 때처럼, 두 단체의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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