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임익기 씨 어머니 故 김분선 씨

어르신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로 온종일 고된 삶 사셨지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자식들에게 귀감이 됐습니다

1997년 청송 고향집에서 故 김분선(가운데) 씨가 딸들과 웃고 있는 생전 모습. 가족제공.
1997년 청송 고향집에서 故 김분선(가운데) 씨가 딸들과 웃고 있는 생전 모습. 가족제공.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평생 법 없이도 삶을 살고 계셨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서 광복과 6·25를 겪으시면서 온갖 고생을 하셨다. 우리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했던 사건들을 직접 겪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1932년생 원숭이띠이다.

그 시대 삶이 다 퍽퍽했겠지만 그나마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 아들 없이 딸만 셋의 맏딸로 태어나 스물이 안 되는 나이에 맏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서히 기울어 가는 가문의 마지막 석양을 지켜보아야 하셨던 불운한 분이다.

전쟁이 끝나고 피란에서 돌아와 폭격으로 불타버린 집을 복구하고 층층시하에 시동생, 일곱 자식 뒷바라지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손톱이 다 헤지고 물 마를 날 없이 피눈물 나는 고된 삶을 사셨다. 어머니는 옷도 거의 안 사 입으시고 있던 옷이 낡아 구멍이 나면 고쳐서 입으시던 근검절약이 몸에 밴 존경스러운 분이다. 어머니는 식사 시간이면 마당 일을 하신다고 밥을 같이 잘 드시질 않았는데 우리를 위해 안 드신 건가 싶기도 하다.

본능처럼 세월을 보내셨던 어쩜 슬픈 어머니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의 역사에 마지막 한 세대이신 어머니가 이제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하셨다. 아마도 지켜보는 자식들보다 더 많은 생각이 들어 표현하기 어려우셨을 거라 생각한다. 꼬장꼬장하고 칼날 같았던 옛 어르신들을 모시며 일생을 부끄럽지 않게 깨끗하고 고운 마음가짐 몸가짐으로 살아오신 어머니.

비록 배움은 넉넉지 아니하셨지만, 몸에 밴 부지런함과 우직함, 그리고 검소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식들의 삶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분이셨다. 항상 형제간 우애있게 지내라, 많이 먹어라, 운전 조심하라고 하시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2007년 가족여행으로 떠난 제주도 한림원에서 찍은 故 김분선 씨 모습. 가족제공.
2007년 가족여행으로 떠난 제주도 한림원에서 찍은 故 김분선 씨 모습. 가족제공.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한여름이면, 어머니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향 집 마당 구석구석을 한참 물끄러미보기도 한다. 자작자작하게 끓인 애호박국에 무쇠솥으로 지은 주먹 크기의 감자가 들어 있는 밥과 호박잎, 맵싸하게 부친 청량 고추전이 생각난다. 어머니. 마당 아랫마루 그늘에서 이른 아침을 귀가 성가실 정도로 우는 매미와 온 가족이 함께했던 그때 그해 그 따갑던 여름이 그립다.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던 일, 주왕산 국립공원에 갔던 일, 청송 달기 약수터에 갔다가 백숙을 먹은 날도 그리운 날들이다.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던 셋째형 장가가는 날에도, 큰손자 대기업 취직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던 날 활짝 웃던 그 모든 모습 하나하나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매일 보고 싶다. 이제는 작게 쪼그라든 어머니의 고달팠던 삶을 조금씩 이해하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항상 자식들 잘되라고 응원하고 걱정하던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기에 저는 행복하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참 좋아하시던 칼국수와 된장, 된장찌개가 오늘 더 생각나네요. 살아계신다면 큰 그릇에 한가득 대접하고 싶다. 자식이 전부였던 어머니... 나의 어머니 거호댁 김분선 여사님. 당신은 저에게 오늘을 버티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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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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