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오세훈 후보에게 70%가 넘는 몰표를 던진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에서 가장 해괴한 해석은 여야의 몇몇 정치인들의 것으로, 20대 남성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친페미니즘 정책에 반발해 오세훈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여론조사나 투표 결과의 분석으로도 뒷받침되지 않는 환상이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의 우군으로 여겨졌던 20대가 대거 여당에 등을 돌렸다는 것. 언뜻 보면 LH 사태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나, 여당 참패의 결정적 원인은 조국 사태 이후 차근차근 누적되어 온 여당의 폭주와 실정에 대한 심판의 민심이고, LH 사건은 거기에 불을 붙인 성냥불에 불과하다.
사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 전의 여러 선거나 여론조사에서 20대는 이미 40, 50대와는 다른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 즉, 20대의 투표 성향은 꽤 오래전부터 60대의 그것과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당을 지지하는 40, 50대는 20대에게 젊은 시절 자기들의 모습을 투사하나,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보다 큰 착각은 20대가 60대와 비슷한 투표 성향을 보인다 해서 그들이 60대에 친화적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20대에게 4050세대가 조선시대 사람이라면, 6070세대는 고려시대 사람에 해당한다. 지금 국민의힘으로 가 있는 그들의 지지가 장기적·지속적으로 거기에 머물 것이라 착각하면 곤란하다.
20대는 두 개의 위대한 이야기, 즉 60대 이상의 '산업화 서사'와 4050세대의 '민주화 서사'를 모두 낯설게 느낀다. 그들은 근대화 2제가 해결된 세상에 태어나 그 안에서 살아 왔다. 그들은 발달한 산업과 민주적 정치체제를 가진 OECD 국가에 사는 것을 자연환경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산업화의 고생담이나 민주화의 영웅담이나 어차피 그들에겐 고리타분한 옛날 얘기일 뿐.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취업난과 양극화 속에 처한 자기 자신이다. 생존경쟁의 압박에 시달리는 그들에게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거창한 대의를 위해 일하거나 싸우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질 게다.
'주의'나 '이념'과 같은 대(大)서사의 시대는 지났고, 그들에게 허용된 것은 개인적 경쟁의 서사뿐. 그래서 그렇게 과정의 공정성에 목을 매는 것이다. 그들에게 기회의 불평등은 운명이고, 결과의 정의는 부당한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는 신성한 것으로, 국가에서 강제로 수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투쟁이 아니라 경쟁." 이 능력주의가 그들의 대안 서사다. 문제는 그 성과를 골고루 누리는 '투쟁'과 달리 '경쟁'의 승리는 극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 '헝거 게임'의 승자는 늘 소수이고, 다수는 패자로 남게 된다. 물론 다들 그 소수에 속하기를 원할 것이나, 그 일은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쟁'은 문제를 개인적으로 푸는 방식이다. 그것이 20대 젊은이들 대다수가 당하는 고통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해결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좌파든 우파든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그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과 함께 문제의 이성적 해법을 모색하는 정치인은 보이지 않고, 그들의 감정에 편승해 표 받을 궁리나 하는 아주 질 나쁜 포퓰리스트들만 눈에 띈다. 여야가 따로 없다. 국민의힘, 민주당, 정의당 등 보수에서 진보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이대남' 표 받겠다고 '안티 페미니즘' 선동을 하고 있다.
어떤 선거인가.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으로 인해 치러진 선거가 아닌가. 그런데 선거를 통해 얻은 교훈이 안티 페미니즘이란다. 황당하지 않은가? 청년 문제의 해법이 페미니즘 타도인가? 페미니스트들이 사라지면 이대남의 천국이 오는가? 이대남의 것만 표심이고, 이대녀의 것은 표심도 아닌가?
정치인이라면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의 진짜 원인을 파악하여, 그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정식화할 의무가 있다. 오로지 대깨문만 바라보고 갈라치기 정치를 하다가 쫄딱 망한 게 민주당 아닌가. 그 선거를 보고 얻은 교훈이 고작 민주당이 했던 짓을 따라 하는 것이라니, 다들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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