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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천500원의 여유,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전하영 외 6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가. 문학동네 제공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가. 문학동네 제공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전하영 외 6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전하영 외 6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국내 주요 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면 소설마니아들의 가슴은 두근댄다. 검증된, 양질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물론 자신이 제대로 읽은 건지 확인하고 싶은 심리도 기저에 있다.

문학상 수상작은 심사위원들의 집단 지성으로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심사과정에서 다수설과 소수설이 격돌한다. 문학상 권위가 때론 판결문에 버금간다고 신뢰받는 까닭이다.

재판은 3심까지 갈 수 있다. 판결이 바뀔 여지가 있다는 거다. 굴지의 문학상도 그렇다. 독자와 작가의 최종심에 좌지우지된 이력이 있다. 수상 반납, 수상자 발표 취소 등은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의 12번째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확실한 수요층이다. 각종 독서모임에서 4월은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들고 토론하기 바쁘다. 최근 몇 년 간의 흐름이다. 수학시험이 끝나면 정답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전교 1등의 시험지를 갖고 와 정답지인 양 매겨보는 교실 분위기와 비슷하다. 무릇 전문가로 분류되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란 '참고할 만한 것'임에도 마치 판결문을 들여다보듯 꼼꼼히 본다.

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동네서점 에디션 / 전하영 외 6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동네서점 에디션 / 전하영 외 6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출제 예상 문제가 시험지에 실린 것만큼 이미 읽은 작품이 수상작에 수록됐을 때 쾌감도 크다. 문학 감각이 살아 있다는 자긍심이다. 등단 10년 이하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에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4월 발간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출간에 앞선 1월 말쯤부터 주목을 받는다. 올해는 특히 수상자 모두가 여성 작가들이었다.

대상을 받은 전하영 작가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부터 수상작인 김멜라 작가의 '나뭇잎이 마르고', 김지연 작가의 '사랑하는 일', 김혜진 작가의 '목화맨션', 박서련 작가의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 한정현 작가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까지 7편이다.

대상이 갖는 선제적 권위는 압도적이다. 매년 7편의 수상작을 싣지만 대개는 대상을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권위에 앞서는 건 경험이다. 차를 사려는 사람은 온종일 도로 위 자동차를 봐도 지겹지 않고, 집을 옮기려는 사람은 '구해줘 홈즈'만 반복해서 봐도 지겹지 않다. 그렇다고 일흔이 넘은 부모님께서 트로트 오디션에 도전하려는 건 아니지만.

관심이 있고 익숙한 것에 먼저 눈길을 주는 게 인지상정인데, 대상 수상작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보다 김혜진 작가의 '목화맨션'에 먼저 눈길이 간 이유였다. 전국에 산재한 '목화'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 빌라, 맨션의 숫자를 알면서도 김혜진이라는 이름과 목화맨션이라는 작품명이 나란히 박히자 대구 출신 작가의, 대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소망적 선입견이 작동한 것이었다. 1978년 준공된 5층짜리 아파트 목화맨션은 범어2동 야시골공원에 접해 마침 재개발 얘기가 나오던 터였다.

대구 수성구 파동 재개발지구 내 철거를 앞둔 빈집들. 매일신문 DB
대구 수성구 파동 재개발지구 내 철거를 앞둔 빈집들. 매일신문 DB

'목화맨션'에 집착한 또 다른 이유는 그녀의 전작 '1구역, 3구역'이 이어준 재개발의 기억 때문이다. 길고양이와 철거민 사이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고민하게 하는 '1구역, 3구역'에서처럼 '목화맨션'도 재개발구역을 소재로 한 수작이 아닐까 짐작한 것이다.

올해도 젊은작가상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선별해 소개한다. 특히나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에 해당할 것 같은, 지체장애인이면서 여성이면서 동성애자인 '체' 언니의 당당한 권리 주장이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러운 김멜라 작가의 '나뭇잎이 마르고'와 동성애자 딸의 커밍아웃 이후 분투기인데 구김이 거의 전해지지 않던 김지연 작가의 '사랑하는 일'이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늘 그랬듯 최종심 판단은 독자에게 달렸다. 412쪽, 5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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