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상반된 위안부 소송 판결, 정치의 법원 개입 상흔 아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측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우리나라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첫 손해배상 소송 재판에서 "일본 제국의 반인도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원고들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 소송 비용은 일본이 부담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이 사건에 대해 "소송 비용을 일본 정부가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 일본을 상대로 한 '소송비 강제집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21일 또 하나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고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재판부는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하며 재판 관할권이 없다고 판단했다. 같은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의 국가면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린 까닭은 무엇인가. '같은 소송, 다른 판결'을 보면서 정치가 법원에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줄곧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잘못된 합의'라는 입장이었다.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지난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문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예상 밖의 발표를 했다.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함."

인정할 수 없다던 '위안부 합의'를 '정부 간 공식 합의'라고 밝힌 것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8일 원고 승소 판결과 관련해)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 뒤 열린 두 번의 위안부 관련 재판에서 원고들(피해자)에게 불리한 판단이 잇따라 나왔다. 과연 법원은 법대로 판결했고, 우연히 이렇게 정부 입장과 궤가 맞은 것인가?

국민들이 법관의 판결에 따르는 것은 법관이 법률과 법리를 통해 재판하기 때문이다. 불만이 많이 남는 판결이라도 수긍하는 것은 공권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판결이 법률에 따른 공정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할 법관이 정치권의 입장이나 여론, 자신의 이상(理想)을 가미해 판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재판은 정치권의 입장이나 여론의 희망, 법관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런 판결은 특정 정치 집단을 정치적으로 돕고, 대중을 기쁘게 한다. 하지만 진실은 묻히고 법치는 무너진다. 위안부 피해자 판결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죽창가'를 외치느냐 '천황 폐하'를 외치느냐에 따라 법관의 판결이 달라진다면 법률은 껍데기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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