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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코로나 여파 국제결혼까지…혼삿길 막힌 농촌 총각들 '절망'

지난해 경북 국제결혼 4건 뿐…전년 대비 10분의1로 감소
국내외 대행업체 잇단 폐업…다문화가정 출생률도 줄 듯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주택가에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주택가에 '국제, 국내결혼' 중개업체의 불법 알선 광고물이 전봇대에 붙어 있다. 매일신문 DB

#1 경북 청송에서 농사를 짓는 A(53) 씨는 지난 2019년 말 사촌 형수로부터 국제맞선 제안을 받았다. A씨는 며칠동안 설레임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평소 사촌 가족을 보고 내심 부러워하던 A씨에게 '결혼'이라는 행복이 당장 찾아올 것만 같았다. 그는 지난해 2월쯤 맞선 날짜를 잡고 비행기 표까지 끊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지난해만 해도 곧 상황이 잠잠해져 맞선을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버텼지만 지금은 자포자기 상태다. 좌절한 A씨는 술에 기댔고 농사까지 망쳤다. A씨는 "하늘길이 언제 뚫릴 지 까마득하다. 농사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2 평소 국제결혼을 꿈꿨던 B(38·안동) 씨는 지난해 1월 국제결혼 대행업체를 찾아 가입비 500만원을 내고 맞선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 업체는 국내외 맞선을 주선한다고 약속했고 결혼 성사까지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수개월간 2주에 한 차례씩 선을 본 B씨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 외모와 문화가 우리와 비슷한 여성을 여러 명 만나면서 만족했고 결혼 희망도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업체로부터 경북에 코로나19가 많이 발생해 맞선 상대들이 만남을 꺼린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맞선은 없었고, B씨가 업체에 환불을 요구했지만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B씨는 "괜한 기대를 품어 돈도 잃고 마음까지 다쳤다.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느냐"고 자책했다.

코로나19가 늦깎이 농촌 총각들의 국제결혼 꿈까지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지역 국제결혼 건수는 2018년 63건, 2019년 51건 등에 달했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난해에는 겨우 4건에 그쳤다. 국제적으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농촌 총각들의 혼사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한때 우후죽순처럼 생겼던 국제결혼 대행업체들의 폐업도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북에서 여행업과 국제결혼 대행을 함께 해온 한 업체 대표는 "사실상 일을 접었다. 우리나라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도 동남아는 언제 좋아질 지 알 수 없다. 현지 대행업체들 모두 철수한 상태"라고 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탓에 관련 업체의 폐업과 휴업이 크게 늘었다. 국제결혼이 막히면서 다문화가정의 출생률도 당분간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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