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 일제강점기 '초등창가' 음악책에 실린 '이 퇴계' 악보 공개

1931년 경성사범 음악교육연구회가 펴낸 '초등창가'에 수록
4절의 노래 속에 퇴계 어린 시절과 학덕, 공적담아 존경·추모
민족말살정책 불구, 일본인들 퇴계 학덕 존경한 중요 자료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이던 시기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 음악교과서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이던 시기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 음악교과서 '초등창가'에 퇴계 선생의 학덕과 공적을 존경하는 내용의 노래 '이 퇴계'가 실린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사진은 노래 '이 퇴계' 악보. 류기남 여사 제공

일제강점기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 음악 교과서에 퇴계 선생의 학덕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내용의 '李 退溪'(이 퇴계)라는 제목의 악보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해당 교과서가 쓰이던 당시에는 일제가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내선일체'와 '창씨개명' 등 민족말살 및 황국신민화 정책을 한창 진행하던 때여서 악보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안동 고성 이씨 며느리인 류기남(65) 여사는 최근 일제강점기 초등 음악 교과서인 '초등창가'(初等唱歌)를 입수하고, 그 속에서 '이 퇴계'라는 제목의 악보를 발견해 본지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1931년에 발행된 해당 교과서는 '경성사범학교 음악교육연구회'가 편찬해 일본창가출판소와 오사카 보문관이 발행한 서적이다.

'이 퇴계'라는 제목의 노래는 수백 여 수록곡 중 하나로, 모두 4절로 구성됐다. 도쿄음악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경성여고 등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한 오오바 유우 노스케가 작곡하고, 나가네 젠소쿠가 작사했다.

1절과 2절에는 '어린 시절 항상심은 주위 사람보다 뛰어났네/ 아버지 일찍 여의고 어머니의 자애를 한몸에 받았네/ 엄한 숙부 교훈 가슴에 품고/ 아침부터 밤까지 성현 학문에 몰두해 공부한 시간이 얼마일까?'라는 가사로 퇴계 선생의 집안과 학업을 소개했다.

이어 3·4절에는 '학업을 갈고 닦은 보람이 있어/ 이윽고 급제해 학업을 이루었네/ 빛나는 그분의 인덕과 명예는 널리 알려졌네/ 동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사람들은 존경했네/ 도산서원과 그의 공적은 얼마나 고귀할까 추모하네'라며 퇴계 선생의 학덕과 공적을 존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이던 시기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 음악교과서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이 한창이던 시기 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 음악교과서 '초등창가'에 퇴계 선생의 학덕과 공적을 존경하는 내용의 노래 '이 퇴계'가 실린 사실이 밝혀져 화제다. 사진은 노래 '이 퇴계' 악보가 실린 음악책 초등창가. 류기남 여사 제공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박사는 "당시 우리나라 아이들이 배우던 교과서는 조선총독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았고 민족말살정책도 본격화되던 시기에 '이 퇴계' 악보가 일본인에 의해 쓰여져 교과서에 실렸다는 것은 일본인들조차 퇴계 선생의 학덕과 인품을 그 만큼 존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문길 한일문화연구소 소장은 "일본인이 지어서 부른 '이 퇴계'라는 노래에 '동해'를 표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 스스로 바다 이름을 '동해'로 인정한 자료이기도 하다"고 했다.

한편 일본은 임진왜란 때 붙잡아 간 퇴계의 제자인 강항을 통해 퇴계의 주자학을 배워 에도(江戶)시대 막부 학문으로 승화시켰다. 당시 퇴계 학문을 배운 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주역으로, 지금도 퇴계학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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