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일하며 배우는 것들

이수영 책방
이수영 책방 '하고' 대표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한지 6년차에 접어들었다. 책방을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재미있겠다", "나도 책방 주인이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흔히 책방 일을 영화에서처럼 햇살 내리쬐는 창가에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여유 있게 일하는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여느 자영업자의 반복적인 일상과 다르지 않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지지고 볶는' 과정이다. 몇 년 동안 책을 거래해도 전화 한 통 없이 이메일만 주고받는 사이도 있고, 모임에서 자주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지만 정작 속마음을 모르는 사이도 있는 반면, 지역도 다르고 몇 번 만나지 않았어도 고민이 있으면 서로 의논하는 사이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소통방식과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여러 관계를 겪으며 필자 역시 의사소통의 방식을 배워가고 또 개선해나간다. 특히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제안을 했을 경우, 결정을 미루지 않고 빨리 얘기해 주려고 노력한다. 일의 특성상 혼자 판단해야 할 일들이 대부분이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이라면 결정을 빨리 전달하는 것이 상대방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반대로 필자가 누군가에게 제안을 하고 결정을 기다려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대는 생각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하더니 2주가 지나도 답이 없었고 성질이 급한 나로서는 몹시 답답했다. 결국 조심스레 전화로 의사를 다시 물었더니 못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럴 거면 진작 말할 것이지, 왜 이렇게 일처리를 하는 거지?'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슬쩍 그 사람을 내 머릿속의 '나쁜 사람 상자'에 넣었다. 물론 그 상자에는 이미 수십 명의 입주민이 있었다. 꽉 찬 상자를 바라보며 수사학 관련 책에서 읽은 '자비의 원칙'(상대방이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상대의 발언을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을 떠올리고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에게는 중요하고 매력적이었던 일이 그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내게 2개월 같던 2주가 그에겐 이틀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의사결정이 빠른 만큼 그는 느리되 신중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신에게는 한량없이 자비롭고 타인에게는 무자비한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문득 책방 이메일로 오는 독립출판 서적들의 입고 문의에 대부분 답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서늘했다. '나쁜 사람 상자'에는 나만 들어가면 충분했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기업가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라는 책에서 "내면을 키우는 것은 오랜 시간 엄격한 수행에 전념해도 이루기 힘들지만, 일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엄청난 힘이 숨어 있다. 매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놀라운 작용을 한다"고 했다.

책방을 운영하며 만나는 사람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부족한 나를 발견하고 고쳐나간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계속 수행을 할 것이다. 언젠가 '홍익인간'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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