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아파트 현관문에
쪽지가 든 비닐봉투가 걸렸습니다.
어느 입주민이 이사 온다는 사연이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입주 후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봉투를 마주하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사 안내문은 많이 봤어도
대문에 걸린 이런 '편지'는 처음이었습니다.
공사 소음이 마음에 걸린 듯 입주민은
다섯 장의 종량제 봉투도 고이 접어 보내왔습니다.
이런 그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사 보다 이웃 불편이 더 걱정이라 했습니다.
죄송한 심정을 글로 쓰고, 마음을 담은 선물도 접고….
잠을 쪼개 사흘 간 아내와 준비했습니다.
공사일이 다가오자 엘리베이터 골목길
모든 세대(87집)를 돌며 편지로 양해를 구했습니다.
소음이 심할 옆집, 위로 세층, 아래로 세층
스물 일곱 이웃은 나흘간 얼굴로 찾아뵈었습니다.
"입주 축하드려요"
"걱정 마시고 예쁘게 꾸미세요"
"찾아주신 것도 고마운데 선물까지…."
"우리 집도 손 좀 봐야 하는데 업체는 어디서?"
말문을 트니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부부는 4년 전에도 이렇게 이사 했습니다.
함께 해야 할 이웃, 먼저 내민 손길 덕에
소란스런 공사에도 민원 한 건 없었고,
개구쟁이가 뜀박질로 쑥쑥 크던 4년 내내
이웃과 얼굴 붉힌 일이 없었습니다.
2019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서 전국 가구 중
아파트 비율은 62.3%. 연립·다세대(22.8%)을 더하면
공동주택은 이제 보금자리의 대세가 됐습니다.
단독주택이 헐린 뒤 정다운 골목길도
함께 울고 웃어주던 '이웃사촌'도 사라졌습니다.
층간소음에 갑질에 말문을 닫는 공동주택, 아파트.
주민도 택배 기사님도 그때 그 '이웃사촌'입니다.
배려하고 소통하면 모두 '아는 형님'입니다.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문 닫으면 모두 남인줄 알았는데
편지 한 통에 마음은 벌써 '이웃사촌'입니다.
시끄럽고 짜증나던 인테리어 공사 소음도
생각해보니 그토록 꿈꾸던 행복한 망치 소리였습니다.
" 입주를 환영합니다"
" 님처럼 배려하는 이웃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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