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그동안 지내던 양육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보호종료아동 A(19) 양. 자립지원금 500만원과 후원금을 아껴 차곡차곡 모아 대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새로운 터를 잡았지만 첫날 밤, 막막함에 펑펑 울었다. 휴대전화 개통부터 가구 구입까지 홀로 해결해야해 막막함이 컸다.
A양은 "시설 자립전담 교사가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동안 단체 생활이 익숙했던 탓에 아직까지 홀로서기가 낯설기만 하다"면서 "앞으로는 홀로 해결해야 하는 게 많은데 혹시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닌지 물건 구매에도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2. 곧 시설 퇴소를 앞둔 B(19) 양도 자립에 대한 걱정이 크다. 임대 아파트를 구해놨지만 당장 B씨는 자립지원금 500만원을 다 써버려 생활비로는 기초생활수급비가 전부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지만 B양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 크다.
B양은 "자립수당과 수급비,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임대료와 요금도 내고 옷도 사 입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진 않을까 모든 게 막막하다"면서 "시끌벅적한 시설을 떠나 아무도 없는 집으로 들어가는 게 싫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종료아동들이 자립 후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자립교육, 경제지원 등을 하고 있지만 정작 아동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랜 단체생활로 경제관념이 없는 상태에서 각종 지원금을 쉽게 써버리는 것은 물론 자립 후에도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겉도는 자립 지원금과 자립교육
보호종료아동에게는 500만원의 자립지원금, 월 30만원의 자립수당 등 자립을 위한 경제적 지원 정책이 있지만 정작 대다수 아동들은 지원금을 적절히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자립 전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며 의식주를 해결해 돈 관리나 자취 등 사회경험은 전무한 탓이다. 아예 자립 전에 지원금을 모조리 써버리는 아동들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대구의 한 아동복지시설 관계자는 "자립 전 시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주거, 생활 등의 문제에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직접 맞닥뜨려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알기 어렵다"며 "경제적 경험이 없다보니 일단 수중에 돈이 있으면 당장 쓰고 싶은 곳에 써버리는 아동들도 많다. 아이들 개인의 돈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돈을 쓰면 안된다고 강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시설에서는 보호대상아동을 대상으로 미취학 아동시절부터 자립준비와 자립생활 정착까지 자립에 필요한 내용을 교육시키지만 정작 아동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자립시기가 아닌 아이들에게는 자립교육은 먼 미래의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A양은 "시설에서 퇴소하기 전에 성교육, 금융교육, 안전교육, 인권교육 등 많은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교육을 받을 때에는 나와는 먼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립 후 막상 현실을 맞닥뜨리니 교육을 잘 들었어 했는데 하고 후회했다. 시설 내 대부분 친구들이 어릴 적부터 받는 자립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의 한 자립지원전담요원은 "매년 자립 관련 교육과 체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실을 파악하기에는 기간이 짧다. 아동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직장생활 기술훈련과 체험을 의무화시키거나 자립 체험 기간을 늘려서 혼자서 생활해보는 실질적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세한 관심 필요, 자립전담요원 부족
정작 보호종료아동들의 안정적인 자립과 사후관리를 돕는 '자립전담요원'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양육시설은 아동 10명 이상일 때 자립지원전담요원 1명을 배치한다. 아동이 100명 이상일 때는 1명을 추가로 배치해야 한다.
이에 대구시 18개 아동양육시설에는 각 1명씩의 자립전담요원이 배치돼 있지만 보호종료 예정 아동부터 보호종료 5년 이내 아동까지 사실상 1명의 전담요원이 모두 관리해야해 아동들을 면밀히 돌보기란 어려운 구조다.
다수의 보호아동들은 트라우마와 상처를 가지고 있어 정서적 치료를 충분히 받은 뒤 사회에 나가야 하지만, 시설 내 심리상담가가 없는 것은 물론 상담이나 정서지원을 돕는 생활복지사도 18개 시설 중 5명밖에 없어 제대로 된 치료마저 받지 못하고 시설을 떠난다. 자립 후 심리적·정신적 문제가 심해지더라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은 아예 자립전담요원과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아동권리보장원의 '2019년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지난 5년간 대구의 보호종료아동 466명 중 연락이 두절된 아동은 120명에 달했다.
다른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지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으로 '내가 방황할 때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았던 것'을 이야기한다. 교사 한 명이 전부를 돌보지 못하는 걸 이해는 하지만 이로 인해 더 엇나가게 되기도 한다"며 "사후 관리가 잘되는 아동들도 많지만 연락을 끊어버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길이 없는 아동들도 많다. 사전에 이들이 충분히 기댈 수 있는 생활복지사와 심리상담원 증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오는 7월에 아동양육시설 보육사와 조리사 등 114명을 추가 채용한다"며 "다만 양육시설은 100% 시비로 운영하고 있어 예산 한계가 있다. 전담요원을 더 늘리면 좋겠지만 예산이 한정적일뿐더러 매년 시설에 입소하는 아동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마냥 증원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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