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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사회화된 사이코패스

박세향 극단 수작 연극배우
박세향 극단 수작 연극배우

극단 난연의 '살인자K'라는 연극을 봤다. 남편 살해 혐의로 잡혀온 K는 부부싸움 끝에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게 되었다며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하지만 조사가 끝나도 경찰은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더 이상의 심문도, 석방 조치도 없는 상황에 답답해하던 K는 비공식 대리 심문을 하러 들어온 연쇄살인마 J를 만나면서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의 대결'이라는 관람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살인자들의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연 관람 후 함께 관람했던 지인과 '반사회적 인격 장애'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연쇄살인마 유영철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타인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침해하며, 반복적인 범법행위나 거짓말, 사기성, 공격성, 무책임성을 보이는 인격 장애를 뜻한다.

대체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라는 말로 쓰이는데,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죄의식과 윤리적인 기준에 대한 의식의 유무로 나뉜다고 한다. 죄의식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면 '사이코패스', 윤리적인 기준은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소시오패스'로 구분하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선천적으로 높은 공격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사회화 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아 그 특성이 두드러진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에 따르면 100명 중 1명 꼴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이코패스 중 극소수만 교도소에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우리와 함께 정상인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 여배우가 사이코패스 의혹을 받고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도 충분히 만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생각하다, 학창시절 윤리시간에 배웠던 '성악설'이 떠올랐다. '성악설'은 고대 중국의 유학자 순자가 맹자의 '성선설'에 반대하며 주창한 학설로,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윤리사상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성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방임하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르침을 통해 후천적으로 수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걸 사람이 자라면서 사회규율에 맞춰 사회화된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만들고, 거기에 맞춰 살아가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그 가치는 사회마다 다르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저 먼 과거에도 '사이코패스'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현재보다 억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에 눌려 대두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어진 성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었던 옛날과 달리, 금전적으로 풍족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의 척도로 여겨지는 현대 사회 분위기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형성을 방임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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