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하필이면 내가 가상화폐 막차 탄 이 때... ‘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지음 / 창비 펴냄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지음 / 창비 펴냄
4월 16일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의 현황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빗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새벽 7천8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조금씩 반등하고 있다. 비트코인에 이어 가상화폐 시총 2위인 이더리움은 320만원 안팎을 오가며 계속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지음 / 창비 펴냄

※(주의) 소설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돼 있습니다.

판교 IT 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의 삶을 다룬 장류진 작가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출간된 2019년이었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는 내 얘기였다. 내 옆 동료의 얘기이기도 했다. 실제 인물을 옮겨다놓은 것 같은 인물 설정, 속도감 있는 문체, 무엇보다 귀신 같이 딱 알아맞히는 심리 비유에 문단보다는 대중이 먼저 뜨겁게 반응했다. 장류진 작가는 주니어 회사원들의 대변인이었다.

등단 직후 첫 소설집을 내기까지 걸린 기간도 짧았지만 장편 발표까지도 잰걸음이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한 그가 처음 내놓은 장편이 '달까지 가자'다. 'To the moon', 가상화폐 가치가 달까지 수직 상승하길 바라는 표현 '투더문'에서 따온 제목이다. 풍속소설이든, 세태소설이든,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든 분류법은 독자가 알 바 아니다. 또 내 얘기다. 오늘의 한국사회를 설명해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던 '일의 기쁨과 슬픔'의 전철을 밟는다. 로드무비에 필적할 머니무비다.

겉으로는 대기업 마론제과 여직원 3명의 고군분투기로 소설은 시작한다. 기존에 없던 프로세스로 입사한 변칙 기수 3인방 정다해, 강은상, 김지송 3명은 일상의 갑질과 박봉에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이들이 뭉친 감정적 연대 고리는 흙수저라는 사실이다. 각각 5평, 6평, 9평짜리 원룸에 월세로 살고 있는데 갚아나가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부모는 자산을 물려줄 경제력이 안 된다.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의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의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4월 16일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의 현황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빗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새벽 7천8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조금씩 반등하고 있다. 비트코인에 이어 가상화폐 시총 2위인 이더리움은 320만원 안팎을 오가며 계속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연합뉴스

내외적 환난에 핍박받는 백성들의 이야기가 발단이었다면 전개는 한 줄기 빛이 나올 차례. 어느 날 다해와 지송은 평소 이재에 밝았던 은상이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넓고 좋은 원룸으로 옮기고 싶었던 다해는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심정이 된다. 1990년대 만화 '시간탐험대'의 돈데크만이 만든 포털게이트가 시간이 갈수록 좁아지듯, 가상화폐 떡상행 막차는 늦게 탈수록 손해고 결국 닫힐 것이라는 강박은 강해진다.

결국 알파벳 'J' 모양의 급상승 곡선 활로에 오를 것이라 믿으며 떡상(시세 급등)행 로켓에 탑승, 기도매매에 돌입한다. 가상화폐 투자를 죄악시하던 지송, 이름 때문에 '쏘리'가 별명이던 그마저 제주도 여행에서 돈의 맛을 간접경험하면서 흙수저 셋의 "가즈아!" 합창은 옥타브를 높여간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는 교훈적 메시지의 궤도에서 벗어난다. 성실하게, 고분고분, 차곡차곡, 목돈쟁취 공식이 아니다. 권선징악 스토리는 더더욱 아니다. 한탕의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는 건 물론, 웬일이니, 하는 족족 성공한다. 외려 일찍, 더 많은 돈을 투자하지 못했던 걸 후회할 만큼이다.

심지어 더 큰 시세 차익을 위해 매도 주문을 넣지 않은 지송은 고점 매도에 성공하기까지 한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 '영끌' 투자에 후회나 반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거 무슨, 워런 버핏도 '엄지척'과 '좋아요'를 바칠 스토리 전개다. 수익 실현 이후에는 성인군자 모드다. 떡상의 유혹에 다시 빠지지도 않는다.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의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의 실시간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이지 주인공들이 마음먹은 대로 다 된 소설 같은 소설이지만, 실제로 가상화폐는 떡상으로만 가는 길을 보여준 전력이 있다. 소설 속 날짜별로 진행되는 소설은 이더리움의 실제 시세를 연동해 보여준다. 가상화폐 시세 하나만큼은 역사적 사실이다. 2017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단 8개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가상화폐 거래를 제한하려는 목소리가 나오자 2030세대는 극렬히 반발하고 있다. 뉴스에 달린 댓글만 적당히 추려보면 이런 내용이 된다. "못 먹어도 고다. 아니지, 못 먹어선 안 되지. 피 같은 내 돈인데 달까지 가야지. 하필이면 내가 막차 탄 이때 금융위원장이 저런 발표를 하냐고. 막말로 이거 아니면 우리 같은 흙수저가 어떻게 집을 사. 착실하게 직장 다니고 한 푼 안 쓰고 연봉 다 모아도 집을 못 사요."

작품에서 정다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내 인생에 한번도 없던 일이었고, 상상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기대조차 염원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것이 내 눈앞에 번쩍이며 펼쳐져 있었다."

마냥 술술 읽힌다고 즐겁게 읽고, 덮어버릴 책은 아니다. 363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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