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결말이 뭐였지?"
며칠 전 친구가 물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영화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나의 학창시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을 사랑했던 감정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어떤 결말이었는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터넷 검색에 매달렸다. 한 블로그에서 정답을 얻었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 영화 속 두 주인공인 하울과 소피는 뜨거운 키스까지 나누면서,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아름다운 결말을 맞았다.
어린 시절,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하울과 소피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건 진심이었다. 그런데 왜 정작 두 인물이 행복해졌다는 결말은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하울과 소피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선량한 마음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이 불행하게 헤어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야기는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서로를 그리워하며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해야 여운이 남으니까. 그러니 내가 사랑한 그 아름다운 영화가 계속해서 빛나려면 두 사람이 불행한 결말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서사의 결말을 생각하는 방식은 이렇게 이율배반적인 데가 있다. 이야기 속 인물이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불행하리라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영화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이 있다. 영화 속에서 전지현 배우가 맡은 '예니콜'이라는 인물은 자신의 타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Happy ending is mine. 난 꼭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해피엔딩으로 끝나더라고요."
나는 이 대사를 좋아한다. 그들 모두 해피엔딩을 원하지만, 모두 해피엔딩을 가질 수는 없었던 인물의 서사가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이 영화의 결말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인물의 불행한 결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내가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고민 또한 결말에 대한 것이다.
"결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시작보다 결말이 더 무겁고 더 어렵다.(그래서 해피엔딩을 피하나보다.) 나는 저 질문에 많이 쓰라는 대답만 남긴다. 시작이 쉬운 이유는 별 거 없다. 많이 써 봐서다. 결말이 어려운 이유는 그 반대다. 많이 써보지 않았기 때문에. 습작을 남겨본 적 있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기세 좋게 소설을 시작했다가 이내 포기했던 경험이 있을테니. 그러니 소설의 결말이란 경험치의 문제다. 단순하다. 시작은 많이 써 봤으니 잘 하는 거고, 결말은 많이 써보지 않았으니까 잘 못하는 거다.
어쨌든 시작한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결말을 내야만 한다. 수차례 경험치를 쌓아야만 한다. 누군가에게 기억될 만한 결말을 가지는 건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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