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놀이'는 1733년(영조 9년) 무렵 윤덕희가 그린 그림이다. 윤덕희는 놀이하는 아이들 뿐 아니라 책을 읽는 여성, 남동생을 돌보는 누나도 그렸다. 어린아이와 여성을 애정어린 관찰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윤덕희는 관심과 배려심으로 주변을 살핀 분이었던 것 같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초는 화가를 둘러싼 현실이 그림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였으나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눈길을 준 화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에 윤덕희의 호 '연옹(蓮翁)' 서명이 있고 인장은 자(字)인 '경백(敬伯)'을 찍었다. 화면 오른쪽에 이름을 새긴 '덕희(德熙)' 인장이 하나 더 있다.
윤덕희는 아버지를 잘 공경한 아들이다.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일대기인 행장(行狀)을 지었고, 아버지의 그림을 찾아내고 모아서 화첩으로 만들어 둠으로서 흩어지지 않고 후세에 온전히 전해지게 했으며, 아버지가 개척한 풍속화와 말 그림을 계승했다. 아들 윤용에게 그림을 가르쳐 윤두서로부터 3대에 걸쳐 풍속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윤두서의 9남 3녀 중 윤덕희만 그림으로 유명했고, 윤덕희의 5남 4녀 중 둘째 아들 윤용만 그림으로 알려졌으며 이후로는 그림의 가학(家學)이 끊어졌다. 윤두서 '자화상'의 감동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 데는 윤덕희의 공로가 가장 크다.
주인공 세 소년 중 둘은 마주 앉아 공기놀이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그림처럼 남자아이들 놀이였다고 한다. 미국의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1858-1929)이 1895년 저술한 '한국의 놀이'(윤광봉 역, 열화당, 2003)에 97가지 전통놀이가 소개되어 있는데 "공기놀이는 소년들이 한다"고 했다. 놀이 방법 설명을 보면 백 년이 훨씬 넘은 지금과 같아서 놀랍다. 공깃돌을 위로 던졌다가 잡아내려 바닥에 놓는 것을 '알 낳기', 손 등에 올렸다가 손바닥으로 잡는 것을 '알 품기'라고 한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소년들은 땅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고 소녀들은 실내에서 배게 위에 동전을 놓고 비슷한 놀이를 하는데 이름이 '자혜'라고 했다.
이 책에서는 공깃돌이 다섯 개나 일곱 개라고 했는데 윤덕희의 '공기놀이'에는 세 개가 보인다. 공깃돌이 점점 늘어났던 것일까? 비슷한 놀이가 이웃나라에도 있어 중국의 돌 던지기인 척석(擲石), 일본의 돌 집어 올리기인 집석(執石)은 우리나라와 달리 소녀들이 했다고 한다. 서 있는 소년이 들고 있는 것은 가는 대나무 줄기에 종이 날개를 좌우로 붙인 바람개비이다. 평안도 말로는 '도르라기'이고 한자로는 '회회아(回回兒)'이다. 요즘 바람개비와 모양이 다른 것도 그림이라서 실감나게 알 수 있는 옛 풍속이다. 소년이던 소녀이던 아이들이 손과 발과 몸을 움직이며 하는 놀이를 눈과 머리로 하는 놀이보다 많이 하며 자랐으면 좋겠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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