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훔친 빵 이름이 뭔지 아세요? 가난한 농민들이 식사용으로 먹었던 깜빠뉴였답니다. 제가 지금이야 수백 가지 빵을 만들 줄 알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어린 시절 맘모스빵을 유독 좋아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어요. 허기진 배를 채울 만큼 진짜 컸거든요."
지난 27일 포항 북구에 있는 한스드림베이커리에선 한상백(50) 대표가 가게 문을 닫은 채 재료 준비에 한창이었다. 빵을 사러 온 고객들은 휴무일이란 안내문을 보고선 아쉬움 속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일부는 멀리서 왔다며 팔다 남은 빵이라도 사갈 수 없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SNS 등을 통해 이미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치는 맛집이지만 이곳은 이달부터 주 2회씩 쉰다.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줄었기 때문이 아니다. 2003년 창업한 한 대표의 '봉사 외도'가 너무 잦아서다.
그는 연간 수십 차례 전국 각급 학교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제과제빵학과가 있는 학교라면 스스로 찾아가서 강연하기도 한다. 물론 사단법인 대한제과협회, 한국제과기능장협회 행사에도 앞장서서 참여하고 있다.
"십여 년 전 단골손님이 부탁하셔서 기업체에서 강연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내세울 건 없지만, 가난했기에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더 치열하게 살아온 제 인생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후배 셰프들이나 셰프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우리 제과제빵 실력을 해외에 뽐낸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그가 후배 양성에 몰두한 계기는 일본 유학 시절의 경험이다. 군 복무를 마친 뒤 3년 동안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현지 제과제빵계의 확실한 도제(徒弟) 시스템이 너무 부러웠다는 것이다. 재료의 정확한 계량이나 발효, 숙성, 오븐의 적정 온도까지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선배가 드물었던 당시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풍토였다.
"내가 먼저 열심히 배워서 후배들에게 친절히 가르쳐주는 선배가 되자고 그때 다짐했습니다. 어느 분야든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 배출돼야 더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도 기술이나 학문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배워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국내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파티셰(patissier)다. 2011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제빵월드컵(Coupe du Monde de la Boulangerie) 아시아 예선에 국가대표로 출전, 한국의 첫 우승과 이듬해 본선 4위 입상에 기여했다. 지난해에는 이 대회 한국대표팀 단장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었다. 1992년 창설된 제빵월드컵은 4년마다 열린다.
제과제빵과의 인연은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교 1년 때 선친의 작고로 가세가 더욱 기우는 바람에 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자 제과업계에 종사하던 큰형이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 입학을 권유했다. 앞으로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베이커리산업이 호황을 맞을 것이란 예측과 함께였다.
"공업계 고교를 나온 작은형은 전기기술자가 되길 바랐는데 저는 큰형 뜻을 따랐습니다. 어린 마음에 빵집이 덜 힘들 것 같아 보여서였죠. 허허허. 그런데 1988 서울 올림픽 외신기자 숙소에 실습을 나간 게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했습니다. 당시 선배들이 만든 빵을 식당에 진열하는 일을 맡았는데, 외국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빵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 행복과 희망을 안겨주고 싶어졌죠."
지난 30년을 빵에 미쳐 살아왔다는 그는 노하우 전수뿐 아니라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에도 열심이다. 고객들의 헌혈증을 빵 교환권으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모아 심장병 어린이를 돕거나 고객들의 구매금액 일부를 적립해 홀몸어르신들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예상 판매량보다 일부러 넉넉하게 더 만들어 사회복지시설에도 정기적으로 보내는데, 돈으로 따지면 연간 1억원을 훨씬 웃돈다.
프랜차이즈사업 계획은 없냐고 묻자 그는 해외에서 마지막 승부를 보고 싶다고 답했다. 비행기로 5시간 이내인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에 매장을 낼 계획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해외 유학, 연수를 통해 풍부한 현지 인맥도 다져 놓았다고 귀띔했다.
"가끔 제 인생에 있어서 빵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참 어려운 질문인데, 굳이 말하자면 '빵은 곧 제 자신'이라고 답하곤 합니다. 레시피와 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똑같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드는 이의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죠. 서울 출신인 제가 만든 빵을 사랑해주시는 지역민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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