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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이건희 컬렉션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15세기 중엽 독일 마인츠에서 활자 인쇄기가 처음 선보일 무렵 유럽의 식자층 특히 이태리의 지식인들은 '다소 천박하고 몇몇 독일 도시에서 야만인들이 사용하는 기술'로 치부했다. 당시만 해도 직접 손으로 쓴 필사본에 익숙한 데다 진품과 원본의 의미와 가치를 중시하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불리는 피렌체에 인쇄기가 처음 들어온 때는 1477년이다. 로마나 베네치아와 비교해 10년 이상 늦었고 파리보다 7년 늦게 인쇄기가 차려졌다. 신기술인 인쇄기가 필경사와 삽화가를 동원한 전통 방식을 뛰어넘지 못한 결과다. 피렌체 최고 부호이자 유력자였던 메디치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메디치가 사람들은 화가와 조각가를 후원하고 도자기와 보석, 주화, 희귀 원고 등을 수집하는 데 큰돈을 썼지만 복제품에 대한 인식은 당대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위대한 로렌조'로 불린 로렌조 디 피에로 데 메디치(1449~1492)도 예술가나 학자 후원자이자 수집가로 명성이 높았다. 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희귀 서적과 원고를 수집해 가문의 장서를 넓힌 한편 도서관과 공공 시설에도 이를 기증했다. 메디치가의 이런 전통은 막대한 부와 예술에 대한 관심, 상류 계층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 등이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이 국내외에서 큰 화젯거리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등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미술품 2만3천여 점이 국가에 기증되기 때문이다. 이 컬렉션 중에 이인성 유영국 이쾌대 등 대구경북 출신 작가의 작품 21점도 대구미술관에 기증된다.

사회에 환원될 이 2만3천여 점의 작품들은 한 애호가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하나씩 손에 넣고 애지중지해 온 작품들이다. 상품을 소비하듯 돈과 맞바꾼 것이 아니다. 좋은 예술품을 보는 눈과 지대한 관심,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 회장이 남긴 유산들은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게 될 '눈부신 사치'이자 공유 자산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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