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갑 작 '윤슬-blue fog' 91.0x60.6cm oil on canvas (2021년)
5월의 어느 봄날. 도심 빌딩 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햇살이 각막을 덮쳤다. 부신 눈에 놀라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정신마저 어찔해졌다. 머릿속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지점으로 진입, 언어적 사고가 끊기면서 잠시 무아(無我)의 상태가 됐다. 이 찰나의 시간에 '나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돌이켜보면 삶이라는 게 늘 일방의 '지금과 여기'에 깨어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현실이 팍팍할수록 '지금&여기'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면서,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지점에서 '꿈' '희망' '소망' 등의 말로 포장해 스스로를 위로해 왔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우리 대부분은 이렇듯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 놓인 줄을 힘겹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줄타기꾼'이나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만 다행스러운 건 이 경계인의 삶을 보듬는 수단이 있으니, 예술이 그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종갑 작 '윤슬-blue fog'는 한눈에 봐도 자연(현실)주의적 화풍과 초현실적 경계에서 감성의 판타지를 화폭에 옮겨놓았다.
화면 저 멀리 숲 사이로 햇살이 호수를 비추고 있는가 하면, 가까이로는 나무와 들꽃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목이 말라 호수를 찾은 듯한 사슴 한 마리가 어떤 기척에 놀랐는지 관람자의 시선 쪽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쳐다보고 있다. 여기에 '청무'(靑霧), 즉 푸른 안개가 숲을 감싸 안고 있고 있는 가운데 호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윤슬'이 무척이나 몽환적이다.
이종갑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인 '윤슬'을 볼 때마다 자연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에 심장이 발작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한다. 신비로움을 지닌 안개에 싸인 자연이 발산하는 매력은 작가의 감성을 자극하고, 작가는 그 감성을 받아들여 안개 색상에 의미와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이 작품이다.
작가에 의하면 보랏빛 안개는 우아함과 품위를, 푸른 안개는 성공을, 노란 안개는 부와 자손의 번영을, 초록빛 안개는 풍요와 행복을 상징한다.
'윤슬'과 '안개'는 작가가 경험하고 추구해온 자연의 아름다움 중 백미다. 하지만 이 둘은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심미(審美)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존재한다. 봄날 햇살이 찰나지간에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도록 한 것처럼 '윤슬'과 '안개'도 현실적 존재를 잠시 망각하게 만든 후 사라지고 마는 '자연의 마술'인 셈이다.
마술은 그 바탕이 속임수다. 설혹 그렇다손 치더라도 마술의 환영 속에 잠시 머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왜냐고? 현실과 초현실의 두 세계의 경계를 넘본다는 것은 두 발은 땅에 딛고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다르마'(dharma)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숙명적 투쟁에서 언제나 승자는 현실에게 돌아가긴 하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초현실적 경계지역에서 나를 반추하고 살아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않으리.
이종갑 작 '윤슬-blue fog'가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보는 이에게 위로의 손길을 던져 줄 수 있는 까닭과 더불어 예술의 존재 의의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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