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백신 확보, ‘양치기 정부’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아랫돌 빼서 윗돌 괴다가 결국 사달이 났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4월 300만 명 접종' 목표에만 매달리다가 전국 곳곳에서 1차 접종이 중단되는 사태를 빚었다. 화이자에 이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도 남은 물량이 바닥나기 직전인 상황을 맞았다. 이는 백신 접종률을 올리기 위해 2차에 맞힐 분량을 당겨서 쓰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1차와 2차 접종 간에 최대 12주 시차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돌려막다가 공급이 여의치 않으니까 5월 들어서 신규 예약을 중단하거나 최소한의 접종만 하고 있다. 백신 수급에 대한 정밀한 계산이 없었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다급한 상황에 봉착하자 정부는 지난 3일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 점검회의를 통해 진화에 나섰다. 5~6월에 코로나 백신을 총 1천420만 회분 공급해 상반기까지 최대 1천300만 명에 대한 접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미 도입된 412만 회분 외에 AZ 백신은 오는 14일부터 6월 첫째 주까지 총 723만 회분, 화이자는 5∼6월 총 500만 회분이 순차적으로 공급된다. 역시나 구체적인 물량은 공개하지 않은 채 이달 중 상당 부분이 충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로써 확인된 사실은 앞으로 2주 동안 국내에 들어오는 백신 물량이 없다는 것이다.

원칙 없고 불투명한 백신 정책이 자초한 국민 불안과 혼란에 대해서 사과는커녕 충분한 해명이 없었다. 오히려 백신 도입과 접종은 당초의 계획 이상으로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인구의 두 배 분량(9천900만 명분) 백신을 이미 확보했고, 4월 말까지 300만 명 접종 목표를 10% 이상 초과 달성하는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국은 수치를 과시한다. 상반기 접종 목표를 100만 명 늘려 1천300만 명으로 상향했고, 백신 확보는 접종 인구 대비 3.7배로 미국보다 높다고 자랑한다. 한국의 코로나 백신 접종률이 OECD 회원국 37개국 중 35위를 기록 중인 사실에선 일본보다 낫다고 여긴다. 또 전국 시·도로 공급하는 백신 물량은 중앙에서 조절하면서 지자체별 접종률을 비교해서 발표한다. 백신 확보에서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국가 역량과 낮은 백신 접종률을 지자체 탓으로 돌리려는 꼼수로 읽히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 백신이 바닥을 보이는 상황에서도 구체적인 도입 일정은 밝히지 않은 채 '믿어 보라'는 말만 거듭해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모더나 최고경영자와 통화한 뒤 2천만 명분의 백신이 올 2분기부터 국내에 들어올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결국 공수표가 되고 말았다.

현재 단계에서 백신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화해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오히려 정부 쪽에서 불신을 심어 왔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장관은 "모더나와 화이자가 우리와 빨리 계약을 맺자고 조르고 있다"는 기막힌 대국민 가짜 뉴스 보고를 했다. 최근엔 백신이 필요 없다고 주장해 온 의료계 인사를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기용했다.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러시아산 백신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외교부 장관은 미국과 백신 스와프 체결을 요청했을 땐 정말 절박한 상황인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다 사흘 뒤 화이자 2천만 명분을 추가 확보했다고 발표했을 때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 불과 며칠 새 마법 같은 기적이 이루어져 천만다행이지만, 한편으론 정말 제때 도착할지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다. 그저 '양치기 정부'가 되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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