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점점 힘들어지는 바깥 날씨라 코로나19 방패삼아 매 그림을 골라보았다. 매를 영험하게 여긴 것은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맹금류임에도 불구하고 길들일 수 있어서 매사냥에 활용했기 때문일 것 같다. 매는 붉은 경면주사로 액막이 부적에 그려졌고, 비단에 진채의 세화(歲畵)로 그려져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으며, 이렇게 부채에도 그려 감상과 심리적 호신을 겸하기도 했다. 무속의 종교로, 세시의 풍습으로, 회화의 예술로 들어올 만큼 영물(靈物)로 대접받은 매이다.
부적에서 매는 몸통 하나에 머리가 셋 달린 삼두매인데 수재(水灾)·화재(火灾)·풍재(風灾)의 세 가지 재앙을 모두 막기 위해서다. 물, 불, 바람은 몸에 수종(水腫), 심화(心火), 풍병(風病)으로 오기도 하고, 폭우나 산불, 태풍 등 재난으로 닥치기도 한다. 삼재가 든 해에는 삼두매를 그린 삼재부(三灾符)를 집에 붙이기도 하고 몸에 지니기도 했다. 세화에서 매는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배경으로 바다에 돌출한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매가 바닷가 절벽에 서식하는 텃새여서 바다의 일출과 새해의 벽사(辟邪)에 잘 어울렸던 것이다.
"굶주린 매가 먹잇감을 노리다"라는 이 '기응소규'는 사냥감을 탐색중인 매가 주인공이다. 멋들어진 나뭇가지에 앉아 저 아래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다. 새와 동물 그림인 영모화이면서 산수화인 영모산수화이다. 수묵담채로 절벽과 계곡의 분위기만 나타낸 은은한 여백미의 산수와 담박한 사의(寫意) 화풍의 매는 조선후기 양반사대부의 취향을 반영한다.
화제는 "늠름여장부(凜凜如丈夫) 소규하소물(所窺何所物) 노천거사(老泉居士)"이다. "늠름하기가 마치 대장부 같은데, 무엇을 노리고 있나?"라고 쓴 감상은 노천 방윤명(1827-1880)의 글로 여겨진다. 왼쪽 모퉁이의 '희원(喜園)'은 이 그림을 그린 이한철의 호이고 인장은 '묘신(玅神)'이다. 묘(玅)는 묘(妙)와 같은 글자로 '묘신'은 당나라 이백이 왕희지를 칭송한 시 '왕우군(王右軍)'에 나오는 '필정묘입신(筆精妙入神)'을 두 글자로 줄인 말이다.
이한철은 19세기 최고의 초상화가이다. 철종, 대원군 이하응 등 왕과 왕족을 비롯해 조인영, 김정희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왕희지급에 해당하는 칭찬인 '묘신'을 이한철이 자신의 자호(字號)나 이름 등 성명인(姓名印)이 들어갈 자리에 감히 찍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초상을 그린 귀현(貴顯)이 내려준 인장이기 때문일 것 같다. 슴슴한 붓질 속에서도 생동감 넘치는 매의 자태는 과연 입신의 경지이다. 노려보는 매의 눈! 코로나를 물리치고도 남을 것 같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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