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대백화점에 갔다. 볼일을 보고 저층으로 내려갔더니 교보문고가 보였다. 나는 서점만 보면 일단 들어가는 습관이 있다. 더구나 나의 첫 소설집이 출간된 직후였다.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들어가 한국문학 코너를 서성거렸다. 찾고 있는 건 당연히 내 책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장 눈에 띄는 중앙 판매대에 내 책은 보이지 않았다.
검색대를 이용해 내 책을 확인했다. 딱 한 권. 재고 현황이 드러났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눈에 띄는 판매대로 올려놓고 싶었다. 나는 단 한 권뿐인 내 책을 찾기 위해 한국문학 코너를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질 않는 거다. 할 수 없다. 마지막 수단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책을 찾는데요."
직원은 내가 찾는 책의 제목과 작가를 확인하더니 금세 찾아냈다. 책은 가장 구석의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나 혼자 찾을 땐 그렇게 안 보이더니. 괜히 직원의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직원에게 책을 받아든 다음이었다.
나는 서점에 단 한 권뿐인 이 책을 중앙에 전시하고 싶은데, 책을 찾아주신 직원이 내게서 멀어지지 않는 거다. (물론 그는 업무로 바빴다) 직원은 근처에 있고, 직원이 직접 찾아준 파란 책은 내 품에 있고. 눈에 띄는 중앙 판매대에 그 책을 올려놓고 돌아서기엔 여간 머쓱한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주저하던 나는 결국…, 샀다.
참고로, 집에 내 책이 없을 리가 없다. 심지어 많았다. (내가 저자인데!) 그래도 결국 샀다. 심지어 정가를 지불하고. (난 저자 할인도 받을 수 있는데!)
그래도 체면을 챙긴 부분은 포인트 적립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심코 내 이름을 불러주고 적립까지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꽤 머쓱하고 창피하다.
짐작하기 어렵지 않겠지만, 내 이름은 순 한글이다. 1980년대 한글 이름 짓기 유행의 결과물이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한 부모님의 애정이다.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한다. 받침이 없어서 발음하기 쉽고 영문 표기도 간단하다. 외국인조차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이나리 씨' 대신 '나리, 들어오렴'이라는 말을 가끔 듣기는 하지만 그다지 불쾌하진 않다. 오히려 내 얼굴을 보고 상대방이 더 죄송해하기 때문에 미안할 뿐.
나는 등단한 이후로 아주 조금씩 더디게 소설을 발표했다. 일부러 더디게 발표한 건 아니다. 기회가 그렇게밖에 오지 않았다. 몸보다는 마음이 힘들었다. 7년간 느린 속도를 유지한다는 건, 아예 멈추는 것보다 잔인했다. 어찌 됐든 올해 내 이름으로 된 소설집을 출간했다. 책 표지에 새겨진 내 이름을 보면 아직 쑥스러운 마음이 크다. 발음도 쉽고 표기도 쉬운 이름인데, 세상에 이 이름을 알리는 건 너무 어렵다. 그래도 이제야 간신히 이름값 비슷한 걸 하고 있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움베르토 에코의 그 유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의 부분이다.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도 이제 남길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뿌듯한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 내 이름이 좀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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