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을 하나씩 둘러보면 '이런 곳에도 책방을 만들었네'라는, 불리한 입지로 보이는 곳들이 간혹 있다. 불편한 교통 여건, 적은 유동인구, 쇠락한 건물 등 저렴한 월세 외에 장점을 찾기 힘든 곳이다. 그럼에도 허허벌판에서 옥토를 일구듯 책향기로 공간을 채우는 이들이 늘상 있다. 반전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감동에 비견되는데 '안녕그림책방'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대실역에서 강정보로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안녕그림책방'은 빌딩 5층 옥상 자투리 공간을 꾸며 만들어낸 루프탑 책방이다. 옥상 공간을 통유리로 둘러싸면서 금호강에 접한 궁산부터 강창교, 대명유수지까지 한눈에 보이도록 했다.
풍경이 좋지만 기본 정체성은 책방이다. 책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에 가깝다. 책방지기 심은경(40) 씨는 "책에 대해 많이 알진 못하지만 내겐 이곳이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라고 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간이 스크린과 무료로 책을 볼 수 있는 방이 따로 있다. 북스테이에 보다 적절해 보인다.
매일 문을 열진 못한다고 했다. 생업이 따로 있다. 책방만으로 생계유지를 하는 건 로망에 가까워서다.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문을 연다. 다만 평일에는 무인공간 대여를 한다고 했다. 독서모임이나 캠핑 분위기를 내려는 가족들이 주로 신청한다고 했다.

어느 동네책방이든 뚜렷이 드러나는 책방지기의 취향은 이곳도 비슷하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 많다. 추천을 요청하자 20쇄 이상 찍은 '무릎딱지'(한울림어린이 펴냄)를 내민다. 서가를 둘러보자 영어교육법 등 개발서도 눈에 띈다. 북큐레이션은 철저히 그림책 위주다. 그림책의 마법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잘 통한다는 것이었다. '인생은 지금'(오후의소묘 펴냄)이 서가에 펼쳐져 있다.
사실 심 씨에게 '안녕그림책방'이 첫 책방 운영은 아니다. 책을 버리기 힘들어했던 그는 2018년 영어도서관을 연 적이 있었다. 규모는 작았다. 대학 때부터 사서 읽고 모은 책 3천여 권이 종자였다. 영어를 좋아해 영어로 된 책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애초 의도와 달랐다. 책을 보는 공간임에도 함부로 해도 되는 곳이라는 일부 이용자들의 태도가 공짜심리로 나타났다. 책을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은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1년 남짓 운영한 뒤 문을 닫았다. '봉사한다는 마음이 없으면 운영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공유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책의 가치를 아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2019년 12월 임대차 계약을 하고 틈나는 대로 조금씩 책을 옮기고 책방을 꾸몄다. 훼방꾼 코로나 바이러스가 걸림돌이었지만 지난해 5월 문을 열었다. 책을 비롯한 구성을 조금 더 바꾸고 결정적으로 이름을 '책방'으로 바꿨다. 이용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덕업상권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이 이 공간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영어도서관은 값진 실패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10년 후에는 이곳도 변해있겠죠. 그림책놀이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책을 매개로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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