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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타협과 대화의 연속' 이한동 전 국무총리 별세, 향년 87세[종합]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김대중 전대통령이 입원중인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병동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09년 김대중 전대통령이 입원중인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 병동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 전 총리는 이날 정오께 숙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 전 총리는 입법·사법·행정 3부에서 화려한 관록을 쌓았다. 특히 5공 군사정권 시절부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金) 시대'까지 정치 격변기의 한복판에 있었다.

내리 6선을 했고 내무장관과 여당 사무총장과 원내대표, 국회부의장을 거쳐 국무총리까지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율사 출신답게 정연한 논리를 구사하면서도 호탕한 성격의 호걸형으로, 친화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상을 앞세우면서도 중대 결정에서는 과단성이 돋보여 '단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통합의 정신을 강조하는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가 좌우명이다. 2018년 발간한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에서도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강조했다.

고인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응시하여 합격한 뒤 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특수 1부장을 지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로 재직중이던 1980년 신군부로부터 정계에 입문하라는 권고를 받고 민주정의당 연천군·포천군·가평군 지구당 위원장을 맡아 제11·12·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각각 한 차례씩 모두 세 차례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다. 대화와 타협을 존중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권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9룡'(龍)의 한 명으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이회창, 이인제에 이어 3위에 그쳐 좌절됐다.

이후 한나라당 대표를 했으나 1999년 탈당해 김종필(JP)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로 변신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DJ) 정부에서는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총리직을 맡기도 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국무총리였다.

2002년에는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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