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한 번 보지 않고 양가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하던 시절, 어머니는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을 왔지만 살림이라곤 쌀 한 톨 없는 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온갖 빚 받으러 오는 사람을 맞이하며 결혼 첫날을 보내셨습니다. 다음 날부터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큰 결심을 하시고 광주리를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시며 사과 장수, 길거리 좌판에 온갖 잡화 장사를 비롯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온갖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숱한 고생으로 우리 4남매는 남부럽지 않게 컸습니다. 함께 고생하시다 일찍 병을 얻어 활동을 못 하게 되신 아버지를 18년간 병구완까지 하시다가 나이 마흔에 혼자 되시어 더욱더 힘든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가 어버이의 날을 맞아 더욱 생각납니다.어머니는 살림이 조금씩 늘어 가자 주변을 돌보셔서 형편이 어려운 집안 조카들까지 교육 다 시키셨습니다.
어렵게 살던 친정 동생들을 선산으로 불러 경제적으로 도와 주시고, 학교 보내주시는 등 온 집안의 힘든 일을 발 벗고 나서 해결하여 여장부란 소릴 듣곤 하셨습니다. 내가 가지는 것 보다 베푸는 것을 더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 걸인 소년이 맨발로 밥을 얻으러 온 걸 보고 새로 산 지 며칠 안 된 제 신발을 신으라고 내어 주실 땐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앞 집의 아이가 만성 신부전증으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 애를 태울 때 이 아이를 살려야 한다며 동네 집집마다 다니며 모금 활동을 하시고, 학교에도 찾아가 학생들 모금까지 협조를 구해 성금을 전달하신 분입니다. 또 이웃집 어려운 사람 있으면 저 몰래 현금도 도와주시는 선행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용서를 몸으로 실천하신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제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3학년 때 옆 반 선생님께서 잘못을 저지른 저희 반 아이들을 대표해서 급장인 저를 불러 따귀를 세게 때려 고막이 파열된 일이 있어 주변의 사람들이 절대로 용서해선 안 된다는 분노에 어머니께서 "저 총각 선생님을 용서해 주세요. 언젠가 제 자식이 선생 안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머리를 숙이신 선생님을 되려 격려하고 손잡아주셨습니다.
어머니! 저 정말 교사가 되어 30년간 학생들에게 어머니의 뜻 그대로 사랑과 용서하는 마음을 가르쳤습니다. 고막 재생 수술이 실패하여 한쪽 귀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으로 평생을 살고 있지만, 어머님 원망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훗날 대구에서 뵈었는데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하셨고 어머니를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늦게 교회에 나오셨지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셔서 온종일 찬송과 기도로 보내셨고, 1년 365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에 참석하시며 신앙의 본이 되셔서 지금도 어머님을 잊지 못해 추모의 말씀을 해 주시는 장로님, 권사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어머님의 불효자가 필리핀의 시골 '하롱'이란 마을에 어머님께서 살아생전 늘 소망하셨던 교회를, 어머님 얼굴 동판을 교회 입구에 붙이고 어머님 이름을 넣어 '정규하롱교회'로 지어 그 마을에 바쳤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참석은 못했지만 예쁘게 지어 입당 예배를 드리고 현재 부흥이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코로나19가 해결되면 제가 꼭 정규하롱교회에 가서 어머님의 사랑과 소망 얘기를 전하고 오겠습니다. "그날은 울지 않을래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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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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