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 레시피] '세 자매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

천차만별 '세 자매' 저마다의 삶 조금씩 불행
어린 시절 겪은 아버지의 폭력이 결핍의 뿌리
아동학대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 망치는 행위

*해당 영화의 줄거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영화 '세자매'의 포스터.

생김새도, 성격도 천차만별인 '세 자매'가 있다.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일까, 왠지 모르게 억울해 보이는 첫째 희숙(김선영). 교수 남편, 두 아이와 서울 근교 최고급 아파트에서 살아가며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는 둘째 미연(문소리). 아이 딸린 이혼남과 결혼, 자신은 글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며 창작의 고통을 매일 술로 풀어내는 극작가 셋째 미옥(장윤주).

세 자매는 서로 자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면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공통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결핍돼있다. 희숙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돈을 뜯어가는 염치없는 남편과 반항적인 사춘기 딸 사이에서 기죽은 채 눈치 보기 바쁘고, 미옥은 스스로 분을 못 이겨 폭발한 감정들을 남편에게 다소 폭력적으로 표출하곤 한다. 미연은 그나마 셋 중 가장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남편의 외도와 어쩐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종교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인생은 모두 조금씩 불안정하고 불행하다.

영화
영화 '세자매'의 한 장면.

세 자매가 지닌 결핍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아픔에 가닿게 된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 겪은 가정폭력. 가부장적이고 늘 술에 취해 살던 아버지는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수시로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곤 했다. 가장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에게서 가장 큰 상처를 받으며 자라온 아이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잊혀진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학대의 흔적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다양한 모습을 띤 채 불쑥불쑥 나타난다. 자책, 집착, 그리고 분노의 모습으로….

오랜 기간 곪아온 세 자매, 정확히는 막내 남동생 진섭까지 네 남매의 아픔은 결국 한꺼번에 터지게 되는데.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는 자리에서 막내 진섭이 술에 취해 나타나 "너 때문에 (내 인생) 다 망했다"고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며 울분을 토해낸다. 학대의 영향일까, 실제 진섭은 성인이 된 지 한참 지났음에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고향 집에 머무르고 있다. 잔치는 엉망진창이 되고, 서로를 말리며 싸우던 세 자매는 그 자리에 초청된 목사에게 사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며 절규한다.

"아버지, 사과하세요. 목사님한테 말구요. 우리한테… 우리한테 사과하시라구요."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4차 공판이 열린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4차 공판이 열린 지난 3월 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 앞에서 시민들이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아동학대는 당시의 고통으로 끝나는 게 아닌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중대한 행위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 맺었던 관계와 정서적 교감이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는 탓이다. 얼마 전 우리는 지속적인 학대 끝에 숨진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보았고, 홀로 빌라에 방치돼 외롭게 죽어간 구미 3세 여아를 보았고, 여행 가방에 6~7시간 동안 갇혀 의식불명 상태로 숨을 거둔 9살 남아를 보았다. 보건복지부의 피해 아동 현황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건수는 총 3만45건에 달하고 가해자의 75.6%가 부모인 것으로 밝혀졌다. 하루 평균 82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폭언 또는 폭력에 고통받는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 사회에 드러나지 않은 희숙, 미연, 미옥, 그리고 진섭이 얼마나 많이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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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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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맨발로 도망친 미연과 미옥은 동네 슈퍼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첫째 언니랑 막내가 지금 아빠한테 맞고 있다고, 대신 신고 좀 해주면 안 되냐고. 그런 두 사람에게 돌아온 건 다름 아닌 어른들의 차가운 방관이었다. "신고? 너거 아버지 수갑 차고, 전과자 돼서 인간쓰레기 되면 좋겠어? 빨리 집에 가서 아버지한테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하고 빌어" 그렇게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집 앞에서 온몸이 피멍으로 가득한 희숙과 진섭을 마주하게 된다.

만약 그때 동네 어른들이 미연과 미옥의 말에 귀 기울여 주었더라면 이들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학대의 상처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현재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당시와 크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해자 처벌 형량 강화, 취약가정에 대한 사회복지체계 확대 등 아동학대 관련 법적·제도적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아동의 존엄과 권리를 '인식적으로' 보호해주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직도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들의 일이고 괜스레 개입했다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꺼리는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식 속에서 세 자매의 아픔은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세자매>는 단순히 한 가정의 이야기를 넘어 부모와 자식 관계, 그리고 어긋난 가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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