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에서 1951년 2월 사이 오늘의 예비군 격인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된 17~40세의 장정 50만 명이 목적지인 부산으로 걸어서 이동하던 중 5만~9만 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또 20만 명 이상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심하게는 손발을 잃었다. 이른바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원인은 국민방위군 간부들의 착복이었다. 그 규모는 현금 23억 원, 쌀 2만5천 섬이나 됐다. 조사 후 군사법원은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에게 무죄, 부사령관 윤익헌에게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에 국민 여론이 들끊자 재조사를 거쳐 재판이 재개돼 김윤근과 윤익헌 외에 강석헌 재무실장, 박창언 조달과장, 박기헌 보급과장 등 5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그해 8월 집행됐다.

규모는 작지만 소련 해체 이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1993년 러시아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의 루스키 섬에 있는 해군훈련소에서 훈련병 140여 명이 영양실조에 걸려 그중 4명이 죽었다. 장교들이 병사의 식량을 내다 팔아 제 배를 채운 결과였다.

그러나 부대 간부들은 "훈련병들은 입대할 때부터 약했다. 대부분 몸무게가 부족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러시아 군 당국은 부대 지휘관을 군사재판에 회부하고, 함대 사령관을 해임했으나 이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자도 군복무 중 비슷한 일을 겪었다. 소고깃국은 소가 건넌 강물이란 뜻의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이었고 돼지고깃국은 살코기는 어디 가고 허연 비계만 둥둥 떠다녔다. 닭고기 튀김은 다리나 날개 등 맛있는 부위는 식기에 가득 담아 장교와 하사관에게 바쳤고 '쫄병'들은 뼈뿐인 목이나 머리로 만족해야 했다.

휴가 복귀 전 코로나 방역으로 격리된 병사에 대한 부실 급식 사실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병사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을 군대로 끌고 와서 이렇게 해도 되나? 최근에는 그것도 하루에 두 끼, 거의 하루 한 끼만 제공됐으며 격리 해제 후 체중이 65㎏에서 50㎏으로 줄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방부는 급식 담당자의 부주의라고 해명한다. 과연 그것뿐일까. 황우도강탕을 먹었던 기자의 코에는 '비리'의 악취가 진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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