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득 동네책방] <20>삼덕동 인문학 헌책방 ‘직립보행’

책으로 얻은 걸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
헌책 3천300권… 삼덕동 10평 가게 안 가득
헌책은 살아있는 생물… 발품 팔수록 보물 캐내

대구 중구 삼덕동의 인문학 헌책방
대구 중구 삼덕동의 인문학 헌책방 '직립보행'. 김태진 기자

"옷 파는 사람은 트렌드를 읽고 손님 체형이나 선호도에 걸맞은 옷을 추천해 주잖아요. 그런데 서점은 왜 말없이 책만 파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책을 통해 얻은 걸 다시 내놔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죠."

1990년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계명대 대명캠퍼스 정문에는 '직립보행'이라는 책방이 있었다. 오랜 기간 영업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당시 대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던 곳이다. 그런데 같은 이름의 책방이 올 2월 말부터 삼덕동에 다시 등장했다.

88학번 최종현(53) 씨다. '그때 그 책방지기'는 아니다. 최 씨는 30년 전쯤 가졌던 책방 운영 로망을 최근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자영업을 하며 책방을 운영하는 최 씨다. 본업과 병행하기 힘들어 주중 영업은 포기했다. 토요일(오후 2시부터), 일요일(오전 10시부터) 이틀만 문을 연다. 주도심과 가깝고 임대료도 낮은 삼덕동 주택가를 택했다. 경북대치과병원 동편이다.

코로나 시국인데 만용에 가까운 개업이 아니냐고 물었다. 불문율처럼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책은 밥과 같은 존재니까 코로나는 책방 개업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생각을 나누려는 꿈을 실현하는 데는 더더욱.

최 씨는 "책과 음반에는 많은 내공이 실려 있다. 손님들과 대화하면서 책을 서로 권하기도 하고 배워 나간다"며 "지식과 교양의 공유 공간인 서점이야말로 많은 대화가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구 중구 삼덕동의 인문학 헌책방
대구 중구 삼덕동의 인문학 헌책방 '직립보행'. 김태진 기자

3천300권의 책이 10평 정도의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절반 이상은 헌책방에서 구입한 것이라 했다. 대개는 그가 읽은 책들이다. 최상급 헌책이다. 비닐로 랩핑된 새 책도 적잖이 중고로 나와 있다. 그럼에도 새 책 가격의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다. 특이하게도 한 번에 3권 이상 살 수 없는 헌책방이다. 당장 읽을 책만 사라는 게 최 씨의 지론이다.

그는 "동네책방이 생겨나고 있지만 중고책방이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온라인 대형서점들이 새 책을 10% 할인된 가격에 굿즈까지 갖춰 판다.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헌책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아주 싼 책도 있지만 비싼 것도 있다. 발품을 팔수록 보물을 캐낼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음료를 팔지 않는다.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동네책방 상당수가 수익을 위해 음료를 팔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직립보행'에서는 직접 타서 먹도록 커피를 비치해뒀다. 500원이다. 음료를 팔면 책은 장식이 된다는 게 그의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이었다. 이곳은 책이 주인인 곳이라고 했다.

책방을 열기 전 헌책방으로 유명한 곳들을 탐방한 적이 있다고 했다. 헌책의 매력은 차고 넘치지만 헌책방들은 조금씩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공통된 것이었다. 그걸 혁파해 만든 곳이 '직립보행'이었다. 그는 깨끗한 공간에서, 정찰제로 팔면서, 보물처럼 살 만한 게 있는 곳이면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사유하며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동기(인센티브)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대구 중구 삼덕동의 인문학 헌책방
대구 중구 삼덕동의 인문학 헌책방 '직립보행'.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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